철석같이 믿었는데 “전부 가짜였다”… 순식간에 전 재산 날린 서민들 ‘피눈물’

사랑과 신뢰를 악용
1년 반 만에 피해액 1천380억 원
AI와 국제 조직의 결합으로 수법 진화

사랑을 믿고 전 재산을 바쳤다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로맨스 스캠’ 피해 사례가 급증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과 국제적인 조직까지 결합해 수법이 나날이 지능화되면서, 피해자들은 물질적 손해를 넘어 극심한 심리적 고통까지 겪고 있다.

친분 쌓은 뒤 금전 요구… 피해액 급증세

로맨스 스캠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접근한 사기범이 일정 기간 대화를 나누며 피해자와 애정을 쌓은 뒤 투자, 송금 대행, 병원비 등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수법이다.

경찰청이 지난해 2월부터 별도로 피해 규모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송석준 의원실이 받은 자료를 통해 1년 반 동안의 누적 피해가 2천428건, 1천38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피해액은 최소 수만 원부터 최대 13억 8천만 원에 이르렀으며, 평균 피해액은 1억 원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거액의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사기범이 피해자와 상호 신뢰 관계, 즉 ‘라포’를 치밀하게 형성하기 때문이라고 지방 경찰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지난해 한 학술지 논문 분석 결과, 이러한 로맨스 스캠이 처음 접근부터 피해 종료까지 평균 8일밖에 걸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맨스 스캠은 과거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던 혼인 빙자 사기 등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형태로, 피해자 개인이 허술해서라기보다는 범죄 수법 자체가 정교해졌다는 지적이다.

AI 활용, 한국인 사칭하며 ‘코인 투자’ 유도

이러한 로맨스 스캠은 과거 외국인이나 해외 전문직을 사칭하는 수법에서 벗어나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최근에는 동남아에 거점을 둔 조직이 한국인을 채용해 유창한 한국어로 내국인에게 접근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유명 배우의 사진과 운전면허증 등 정교하게 위조된 자료가 사기에 동원되기도 해 피해를 키운다.

사기 유형 또한 다양해졌다. 초기에는 단순히 송금을 요청하는 방식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고가의 선물을 보냈다’며 실제 존재하지 않는 운송 업체의 송장을 전달한 뒤 통관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는 방식이 빈번하다.

가장 악질적인 수법은 가상자산 투자를 유도하는 이른바 ‘돼지 도살 스캠’이다. 사기범은 투자로 수익을 경험하게 해 피해자의 신뢰를 얻은 후, 전 재산은 물론 대출금까지 끌어와 투자하게 한 뒤 출금을 막고 돈을 가로챈다.

2차 피해 예방과 제도적 안전망 구축

로맨스 스캠은 정서적 유대감을 이용한 범죄라는 특성상 금전적 손실 외에도 피해자에게 일반 보이스피싱보다 큰 정신적 고통을 남긴다.

피해자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것을 우려하여 피해 사실을 숨기려 하거나 잘못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로맨스 스캠 피해자 모임에 같은 피해자인 척 접근해 손해를 만회할 기회가 있다며 또 다른 사기 행각을 벌이는 2차 피해 사례까지 발생한다.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각심이 중요하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7월, SNS 등에서 만난 이성이 한국 여행을 계획 중이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를 의심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호감을 표시하며 결혼 등 미래를 약속하거나, 가상자산 투자로 돈을 벌었고 방법을 알려주겠다며 거래소 주소를 보내주는 경우도 반드시 사기를 의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도적 안전망 마련도 시급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3년 자료를 통해 허위 계정이 사기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본인 확인 의무화 검토와 정부의 관리·감독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나아가 인공지능 기반 사기 탐지 기술 개발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예방 교육의 시행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