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칩 시장 압도적 1위 기업인 엔비디아가 ‘칩 공급자’를 넘어 AI 산업 전체의 ‘전략적 투자자’로 변신하고 있다. 미 경제방송 CNBC가 공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서만 AI 인프라 전반에 걸쳐 총 400억 달러(약 58조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행보는 단순한 재무적 투자가 아니라, 자사 칩 수요를 생태계 차원에서 창출하려는 장기 전략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구조가 과거 닷컴 거품을 키운 순환거래와 유사하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오픈AI에만 300억 달러…광섬유·클라우드까지 전방위 베팅
이번 투자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오픈AI에 투입된 300억 달러로, 전체 투자액의 75%에 해당한다. 앤트로픽과 일론 머스크의 xAI도 투자 대상에 포함됐다.
엔비디아는 기반모델 기업 외에도 공급망 전반에 자금을 쏟아부었다. 데이터센터 운영사 아이렌, 유리·광섬유 제조사 코닝, 광학 기술 기업 마벨·루멘텀·코히어런트 등이 포함됐다. ‘네오클라우드’로 불리는 신흥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와 네비우스에도 자금을 지원했다.
“승자를 고르지 않는다”…젠슨 황의 ‘5단 케이크’ 전략
이번 투자의 밑바탕에는 젠슨 황 CEO의 독특한 산업 프레임이 깔려 있다. 황 CEO는 AI 산업을 에너지·칩·인프라·모델·애플리케이션으로 구성된 ‘5단 케이크’에 비유하며, 윗단계로 갈수록 더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된다고 강조해왔다.
황 CEO는 지난달 팟캐스트에서 “훌륭하고 놀라운 기반모델 기업이 무척 많아 그들 모두에 투자하려고 노력한다”며 “우리는 승자를 고르지 않는다. 모두를 지원해야 한다”고 밝혔다. 투자 재원은 막대한 현금흐름에서 나온다. 엔비디아는 지난 회계연도에만 970억 달러(약 142조원)의 잉여 현금흐름을 창출했다.
이러한 투자 전략은 실질적 성과로도 이어졌다. 엔비디아의 재무제표상 비상장 주식 가치는 2026년 1월 말 기준 222억 5천만 달러로, 1년 전의 33억 9천만 달러 대비 6배 이상 급증했다. 상장 주식 평가이익도 89억 2천만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2025년 9월 단행한 인텔 투자의 성과가 반영된 결과다.
‘순환 투자’ 경계론…닷컴버블 데자뷔 우려
그러나 월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시각도 제기된다. 웨드부시 증권의 매슈 브라이슨 분석가는 “엔비디아의 투자 행보는 순환 투자에 정확히 부합한다”고 지적했다. 엔비디아가 AI 기업에 투자하면, 해당 기업이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고, 그 수익이 다시 투자 재원이 되는 구조가 과거 닷컴 거품 당시의 순환거래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미즈호의 조던 클라인 반도체 담당 분석가는 특히 네오클라우드에 대한 투자를 두고 “의문스러운 부분”이라며 회의적 평가를 내놓았다. 수익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신흥 클라우드 기업에 대한 과도한 자금 투입이 버블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될지 여부는 결국 기반모델 기업들의 실제 수익 창출 능력에 달려 있다고 분석한다. 엔비디아는 지난 2월 실적발표에서 “투자는 AI 생태계 범위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 전략적으로 집중돼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