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 없어서 못 구해요”… 지구 반대편서 ‘돈뭉치’ 들고 몰려왔다, 비결 뭐길래

중동 전력시장 한국 기업 급부상
올해 상반기만 4692억원 수주
신재생 전환이 몰고온 기회

중동 국가들이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해 전력망 현대화에 속도를 내면서, 전력기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 기업들이 거두는 성과도 주목할 만하다.

반년 만에 작년 실적 60% 돌파

4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일렉트릭이 올해 상반기 중동 지역에서 거둬들인 수주액은 4692억 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전체 수주 실적의 61%를 이미 넘어선 수치다. 매출 또한 가파르게 증가해, 지난해 8105억 원을 기록하며 2022년(3904억 원) 대비 두 배 이상 뛰었다.

이 같은 성장은 중동 각국이 추진 중인 야심찬 에너지 전환 전략에서 비롯됐다. 현재 중동 지역에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산업 인프라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송전·배전망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50%까지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으며, 아랍에미리트는 전력 생산량을 2023년 149.6테라와트시에서 2028년 184테라와트시로 23% 늘릴 계획이다.

오만과 카타르 등 다른 중동 국가들도 전력망 현대화에 속도를 내면서, 송전부터 배전까지 전력 인프라 전반에 걸친 대규모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송전에서 배전까지 영토 확장

HD현대일렉트릭은 단순한 전력기기 공급을 넘어 배전기기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시장 수요를 온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제품 라인업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략의 일환으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2일까지 두바이에서 열린 중동 최대 물·에너지·환경기술 박람회 ‘WETEX 2025’에서는 배전기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HD현대일렉트릭은 이번 행사에서 아랍에미리트 주요 전력청을 비롯해 사우디, 오만, 바레인 등 중동 주요 국가의 전력회사 임원들과 직접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대신증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중동 지역에서 AI 데이터센터 건설이 확산되면서 전력기기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HD현대일렉트릭은 오랜 기간 축적한 현지 실적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미 변압기 시장까지 접수

중동에서의 성과에 이어 북미 시장에서도 HD현대일렉트릭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북미 변압기 시장 점유율은 2년 전 7%에서 현재 15%로 급등하며 1위 자리에 올라섰다.

미국 내 리쇼어링(Reshoring) 정책과 AI 산업 성장에 따른 전력 인프라 수요 증가가 맞물리면서, 한국산 변압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캘리포니아에서 782억 원 규모의 대형 변압기 9대 공급 계약을 체결해, 약 5만 가구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예정이다.

또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몰려 있는 텍사스에는 신규 판매 법인을 설립하며 데이터센터용 전력기기 수요 증가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향해 나아가는 가운데, 한국 전력기기 기술은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에너지 시대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중동의 사막부터 미국 텍사스 평원까지, 한국 기업들이 생산한 전력기기가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