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체 추진제를 다루던 배관 세척 작업 중 폭발이 일어났다. 사망 5명, 중경상 2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단순한 산업재해로 끝나지 않았다. 창원의 K-9 자주포 생산라인부터 판교 R&D 캠퍼스까지, 전국 9개 사업장의 생산라인이 동시에 멈춰 섰다.
지난 6월 1일 대전 유성구 외삼동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로켓에 주입하는 고체 연료의 잔류물이 남은 배관을 세척하는 과정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으로 회사 측은 추정하고 있다. 통상 ‘위험도가 낮다’고 분류해 온 2차 공정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는 점이 업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6월 4일부터 5일까지 이틀간 필수 공정을 제외한 전국 9개 사업장의 생산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2023년 한화에어로스페이스·한화디펜스·㈜한화 방산부문 통합법인 출범 이후 이 같은 전사적 가동 중단은 처음이다.
K-9부터 미사일 추진제까지…9개 사업장이 멈추다
이번 생산 중단은 방산 전 분야에 걸쳐 있다. 추진제와 장약을 생산하는 대전·충북 보은·전남 여수 사업장, K-9 자주포와 장갑차·항공엔진을 생산하는 경남 창원 1·2·3사업장, 그리고 대전·판교·아산의 R&D 캠퍼스가 모두 포함됐다.
대전사업장은 단순한 공장이 아니다. 2023년 기준 대전공장의 매출은 1조3,189억 원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연결 기준 전체 매출의 약 9.1% 수준으로 추산된다. 고체 추진제는 로켓·미사일 공급망에서 병목이 될 수 있는 핵심 공정이다. 가동 중단이 장기화될 경우 납기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재 대전사업장의 생산 재개 시점은 특정되지 않은 상태다.
‘위험도 낮음’으로 분류된 공정이 참사를 불렀다
이번 사고의 핵심 쟁점은 사고가 발생한 공정의 성격에 있다. 회사는 이미 위험도가 높다고 판단한 일부 공정에는 무인화를 도입했거나 건설 중이었다. 그러나 사고는 ‘위험도가 낮다’고 분류해 온 세척 공정에서 터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즉각 방침을 바꿨다. 대전·보은·여수 3개 사업장의 추진제 생산·취급 관련 전 공정을 대상으로 무인 자동화를 추진하기로 확정하고 검토에 착수했다. 이는 리스크 평가 체계 자체가 현장의 실제 위험을 과소평가했을 수 있다는 사실상의 자기 인정이다.
특별 안전점검에서는 보호구 착용 상태, 접지, 온·습도 관리, 치공구 관리 현황, 안전장비 노후화 여부, 저장소 및 폐화약 관리 상태까지 전 항목을 점검한다. 최근 3개년 위험성 평가 결과에 대한 개선 조치 이행 상태도 확인 대상에 포함됐다.
방산에서 석유화학까지…그룹 전체가 안전 리셋
이번 조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화, 한화솔루션, 한화토탈에너지스, 한화임팩트, YNCC 등 석유화학 계열사 국내외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환경·안전 정밀 점검이 지시됐다. 각사 대표이사가 직접 책임지는 자체 점검단을 구성해 6월 10일까지 완료해야 한다.
이 조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요구하는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선제적 대응 성격도 띤다. 동시에 이번 사고를 ‘대전 한 공장의 문제’가 아니라 그룹 전체의 안전문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방산·화약류 제조사 전반에 대한 비상 안전점검 요구로 사회적 압박이 확산될 가능성도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고강도 안전 혁신 종합대책을 수립·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추진제 공정의 무인 자동화, 전 사업장의 설비·환경 재점검, 그룹 차원의 안전 거버넌스 재정립이 동시에 맞물려 진행된다. K-9 자주포부터 미사일 추진제까지 국내 방산 공급망을 좌우하는 기업이 어떻게 안전 시스템을 재구성하느냐는, 한화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방산 산업 전체의 신뢰도와 직결된 과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