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실효환율 16년만에 최저
계엄 사태보다 원화가치 더 하락
해외주식 투자 급증이 주범

정치적 혼란기였던 올해 3월보다도 더 떨어진 지표가 나왔다.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이 비상계엄 사태 당시보다도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정치적 대혼란 속에서도 이 정도까지는 가지 않았던 원화가치가 지금은 그보다 더 추락했다.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치다.
실질실효환율, 16년 2개월 만에 최저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이 23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은 89.09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3월, 비상계엄 논란과 국내 정치 불안정성으로 환율 변동성이 극대화됐던 당시(89.29)보다도 더 낮은 수준이다. 지난 2009년 8월 금융위기 시기의 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실질실효환율은 한 나라 통화의 대외 구매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기준점인 100보다 낮으면 자국 통화가 저평가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현재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BIS가 통계를 집계하는 64개국 가운데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은 수치다. 특히 10월 한 달 동안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하락 폭은 -1.44포인트로,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환율 떨어뜨린 진짜 주범은 ‘해외 주식 투자’

전문가들은 단순한 무역 불균형이나 경기 침체보다, 한국인의 급증한 해외 주식 투자 성향이 실질환율 하락의 핵심 원인이라고 본다.
한국은행의 국제수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월부터 9월까지 내국인의 해외 주식 투자액은 718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421억 달러)는 물론, 2023년(298억 달러)에 비해서도 급증한 수치다.
10년 전인 2015년, 같은 항목의 투자액이 163억 달러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주식 투자는 자금 회전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환율에 미치는 영향이 즉각적이고 크다”며 “최근에는 미국 증시의 인공지능(AI) 관련 주가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해외 주식에 대한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환율 1500원 돌파도 시간문제?

지난 21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75.6원에 마감했다. 주요 증권사와 연구기관들은 내년 환율 상단을 1500원 이상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외환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식에 대한 구조적인 쏠림 현상과 함께, 수출 기업들의 환전 지연도 원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원화가치 하락이 단기적인 흐름이 아니라, 구조적인 패턴이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시장 전문가들은 당분간 원화 약세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또한 외환당국의 개입 여부, 미국 연준의 금리정책 변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리며 환율의 방향성이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