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역사 자랑하더니 “이게 무슨 국제적 망신인가”… 공든 탑 무너진 이유 알고 보니

70년 영광의 상징을 스스로 반납
미국의 강력한 수입 금지 조치가 결정타
반복되는 인권유린, 결국 발목 잡았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근대 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태평염전이 결국 고개를 숙였다.

‘염전 노예’라는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스스로 국가등록문화유산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국가등록문화유산’ 영광을 스스로 내던진 이유

2007년, 전남 신안군 증도에 위치한 태평염전은 한국 염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53년 한국전쟁 피난민 구제와 소금 생산 증대를 위해 조성된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큰 단일 염전으로, 돌로 만든 소금창고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박물관이었다.

하지만 지난 26일, 태평염전은 국가유산청에 문화유산 등록을 말소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화재나 자연재해로 훼손된 것도 아닌데 소유주가 직접 말소를 요청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태평염전 측은 “강제노동 사건으로 인해 문화유산으로서의 긍정적 상징성과 사회적 의미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태평염전이 이토록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 4월 미국 정부가 내린 강력한 제재였다.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태평염전에서 생산된 모든 천일염 제품에 대해 수입을 금지하는 ‘인도보류명령’을 발동했다. 이는 해당 제품이 강제노동으로 만들어졌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있을 때 내려지는 조치다.

CBP는 태평염전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임금 미지급, 신분증 압수, 신체적 폭력, 열악한 노동 환경 등 국제노동기구가 정한 강제노동의 여러 징후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기업이 강제노동을 이유로 이러한 제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국내외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곪아 터진 신안 염전의 그림자

사실 신안 염전의 인권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2014년과 2021년, 그리고 올해까지도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외딴섬으로 유인해 노동력을 착취한 ‘염전노예’ 사건이 반복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신분증을 빼앗기고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채,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간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혹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간 태평염전 측은 일부 임차 사업자의 개인적인 일탈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과 피해자들의 증언은 이러한 주장이 변명에 불과함을 입증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한국 정부와 기업이 이 문제를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가 국제적인 망신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뼈아픈 지적을 남겼다.

결국 70년 역사의 자부심은 무너져 내렸고, 국내 최대 염전은 스스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우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