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수익률 2.34% 불과
적립금 83% 예적금 방치
3가지 기금형 운용안 제시

“10년 동안 겨우 2% 수익이라니, 차라리 예금이 낫겠다.”
많은 근로자들이 퇴직연금 통장을 들여다보며 허탈함을 토로한다. 431조원이 넘는 거대한 퇴직연금 자산 중 무려 83%가 예·적금에 묶여 ‘잠자는 돈’이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퇴직연금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를 본격 가동하고 잠자는 퇴직연금을 깨우기 위한 기금형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퇴직연금, ‘예적금 연금’ 전락

퇴직연금 제도는 지난 2005년 12월 도입된 이후 빠르게 성장해 현재 적립금 규모가 431조원에 이르렀다. 하지만 외형 성장과 달리 실질적인 성과는 초라하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34%에 그쳤다. 같은 기간 임금 상승률(3.47%)은 물론 국민연금 평균 수익률(6.56%)에도 크게 못 미친다.
수익률이 낮은 이유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현재 퇴직연금은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골라야 하는 ‘계약형’ 구조다.

상품군이 복잡한 데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들은 대부분 안전 자산에만 머무른다. 실제로 전체 적립금 중 83%가 예·적금 같은 원리금 보장 상품에 쌓여 있다.
정부는 2022년 7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을 도입하며 수익률 개선을 꾀했지만, 가입자가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방식(옵트인)인데다 시장에 300개가 넘는 상품이 혼재해 실질적인 변화는 미미하다는 지적이다.
‘기금형’이 대안?…세 가지 모델로 갈린 국회

기금형 퇴직연금은 개별 근로자가 아닌, 독립된 수탁법인이 자산을 통합 운용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처럼 전문가가 장기적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구조다.
이미 검증된 사례도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이 2022년 도입한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은 30인 미만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최근 3년간 연평균 6%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현재 국회에는 이를 바탕으로 한 3가지 형태의 법안이 제출돼 있다.

첫째는 한정애 의원이 발의한 ‘대기업 자율형’ 모델이다. 가입자 수 3만 명 또는 적립금 3천억 원 이상인 대기업이 노동부의 허가를 받아 직접 비영리 수탁법인을 설립하고, 노사 공동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구조다.
두번째는 안도걸 의원이 제안한 ‘금융사 경쟁형’ 모델이다. 중소기업은 기존 ‘푸른씨앗’을 확장 적용하고, 그 외 기업은 금융사들이 만든 전문 운용사 중 하나를 선택해 자산을 맡길 수 있도록 한다.
세번째는 박홍배 의원이 추진하는 ‘공공기관 주도형’이다. 고용노동부 산하에 ‘퇴직연금공단’을 신설해 ‘푸른씨앗’을 포함한 전체 중소기업 기금을 통합 관리하겠다는 구상이다.

향후 국회 연금개혁특위는 이 세 법안을 병합 심사해 최종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누가 굴릴 것인가’가 핵심 쟁점

다만 전문가들은 기금형 제도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핵심은 ‘전문성 있는 자산운용’이다. 해외 투자나 대체 자산에 이르기까지 중장기 포트폴리오를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노사 대표성을 확보하면서도 의사결정이 효율적인 ‘지배구조’ 설계가 필수다. 전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공공성과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성과 선관의무 법제화 필수

한편 퇴직연금은 모든 사업장이 의무 가입해야 하는 제도로, 사실상 준공적 연금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어떤 방식이든 국민의 노후 자산을 책임지는 ‘선관주의 의무’를 명문화하고, 이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관리 감독이 전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 전문가는 “단순히 수익률을 높이자는 차원을 넘어야 한다”며 “국민의 노후를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