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쪼개 꼬박꼬박 냈는데 “건강보험이 이럴 줄이야”… ‘분통’ 터진 서민들

보험료 미납자에게 혜택 돌아가
성실 납부자는 ‘봉’ 신세
체납자 4천여 명이 39억 챙겨

“매달 빠져나가는 내 돈으로 보험료 한 푼 안 낸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다니…” 최근 건강보험 제도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많은 시민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보험료를 성실히 내는 국민들의 돈이 오랫동안 보험료를 내지 않은 체납자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체납자들에게 돌아간 수십억 원의 혜택

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공단 종합감사 결과에 따르면,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건강보험료를 1년 이상, 1천만 원 넘게 내지 않은 고액·장기 체납자 4천89명에게 총 39억 원이 넘는 본인부담상한액 초과금이 지급된 것이다.

작년 한 해에만 1천8명의 체납자가 약 11억 5천만 원을 받아 갔다. 이는 전체 체납자의 3% 수준이지만, 성실하게 보험료를 낸 다른 가입자들의 돈으로 체납자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제도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 ‘본인부담상한제’는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연간 병원비가 일정 금액을 넘으면 초과분을 건보공단이 대신 내주는 제도다.

그러나 이 제도의 허점으로 인해 보험료를 내지 않은 사람들까지 혜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3년째 제자리걸음인 제도 개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1대 국회에서 체납 보험료와 환급금을 맞바꾸는 법안이 발의됐으나 법적 문제(보험급여를 받을 권리는 압류 금지 등)로 폐기됐다.

건보공단은 지급할 환급금에서 밀린 보험료를 미리 빼고 주는 방식으로 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지만, 3년 넘게 개선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기간 동안 3천 명 이상의 체납자가 30억 원 넘는 혜택을 받아 간 셈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병원이나 약국에서 실수로 진료비를 더 많이 받았을 경우 돌려주는 ‘본인부담금 환급금’ 제도에서도 비슷한 허점이 발견됐다.

현행법상 이 환급금은 체납된 보험료와 상계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돌려줄 돈이 있어도 밀린 보험료가 있다면 그만큼 빼고 주거나 아예 안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건보공단 시스템의 허점으로 인해 일부 고액·장기 체납자들에게 이 환급금이 밀린 보험료와 상계되지 않고 그대로 지급된 사실이 확인됐다.

2021~2024년 기간 매년 2천500~2천800명가량의 체납자가 많게는 3천만 원 이상의 환급금을 받아간 것이다.

법에 정해진 상계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은 시스템 관리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과잉진료로 성실납부자 부담 가중

이러한 제도적 허점에 더해 의료기관의 과잉진료는 성실한 납부자들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달 21일 발표한 ‘건강보험 지출 증가 요인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건강보험 실질 지출이 10년 사이 28%가량 늘어났다.

보고서는 이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진료 단가 상승(76.7%), 진료 횟수 증가(14.6%) 등을 꼽았다.

제도적 허점과 의료계의 과잉진료라는 이중고 속에서 전문가들은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는 국민의 부담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고 보험료 납부자들의 경제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서는 이런 재정 누수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