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3만 호 넘는 집에 “이제 아무도 안 살아요”…우려 현실로

방치된 빈집에 쏟아지는 민원
지역소멸 악순환의 시작점
전국 13만 호 넘는 빈집 심각

“빈집 때문에 주변 주택들의 경제적 가치가 하락하고 있습니다.” “해당 마을에 이주하려는 사람이 없어 깨끗한 생활환경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한때 웃음소리와 정겨운 대화로 가득했던 마을들이 이제는 쓸쓸한 빈집들로 채워지고 있다. 낡은 대문은 녹이 슬고, 창문은 깨진 채 방치된 집들이 늘어날수록 마을의 활기는 사라지고 있다.

빈집 문제는 더 이상 단순한 미관상의 문제가 아닌, 지역사회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비어가는 집, 쌓여가는 민원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행정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빈집 수는 13만 4,009호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농어촌 지역에 7만 8,095호, 도시 지역에 5만 5,914호가 분포해 있어 빈집 문제가 이제는 농어촌 지역만의 문제가 아닌 전국적인 사회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지난달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빈집 관련 민원이 2022년 598건에서 2024년 989건으로 약 1.7배 급증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민원의 77.8%는 철거 및 정비 요청이었으며, 주요 사유로는 붕괴·화재 등 안전사고 우려(50.1%), 위생상 유해 문제(33.6%), 주거환경 및 도시미관 훼손(11.4%), 범죄발생 우려(4.9%) 등이 꼽혔다.

고령화와 맞물린 지역별 빈집 실태

이처럼 늘어나는 빈집의 지역별 분포를 살펴보면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다.

행정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역별 빈집 현황은 전남이 2만 6호로 가장 많았고, 전북 1만 8,300호, 경남 1만 5,796호, 경북 1만 5,502호, 부산 1만 1,471호 순이었다.

특히 부산은 광역시 중 유일하게 빈집이 1만 호를 넘어 서울(6,711호)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빈집 수를 보면 전남이 1,118호로 가장 많았고, 전북(1,053호), 경북(612호), 경남(489호)이 뒤를 이었다.

전남, 전북, 경북 등은 인구 10만명당 빈집 수가 전국 평균(262호)의 2~4배에 달해 빈집 문제가 특히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목할 만한 점은 빈집과 고령인구 비율 간의 밀접한 관계다. 이 두 변수 간 상관계수는 0.793에 달했다.

고령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인 전남(27.2%)과 경북(26.0%)은 빈집 수나 인구 10만명당 빈집 수 모두 상위권을 차지했다.

악순환되는 빈집 문제와 대응 과제

통계청 자료를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2023년 기준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빈집은 153만 4,919호로, 전체 주택 중 7.9%가 비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전남은 주택 7채 중 1채가 빈집일 정도로 빈집 비율(14.5%)이 높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증가 추세다. 12개월 이상 비어 있는 빈집은 2005년 대비 2020년에 102.9% 증가했다.

특히 경남은 빈집이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증가율도 163.4%로 2번째로 높아 문제의 심각성이 두드러졌다.

정부는 전체 빈집 중 8만 7,689호는 활용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4만 6,320호는 철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방치된 빈집은 ‘깨진 유리창 효과’처럼 추가적인 빈집 발생과 주민 이탈을 촉진해 지역소멸을 가속화하는 악순환의 시작점이 되고 있다.

현재 도시 지역의 빈집은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이, 농어촌 지역은 ‘농어촌정비법’이 규율하고 있지만, 정부는 지난해 9월 정부 합동 빈집 정비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전국 단위 통합적 관리체계 구축을 시작했다.

이제는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