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가 58년 역사의 자동차 제조업체라는 틀을 공개적으로 깨고 나섰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2026년 3월 26일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제58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차량을 생산하는 기업을 넘어 지능형 시스템을 만드는 기업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2025년 기준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20조 5,459억 원으로 글로벌 2위를 기록했다. 기존 2위였던 독일 폭스바겐그룹이 89억 유로(약 15조 3,000억 원)로 4위로 추락한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는 이 수익력을 기반으로 AI·로보틱스·자율주행이라는 세 축의 기술 기업 전환에 본격 시동을 걸었다.
엔비디아·구글·웨이모…’기술 동맹’으로 자율주행 판 바꾼다
현대차의 자율주행 전략 핵심은 자체 개발이 아닌 ‘최강 동맹’이다. 무뇨스 사장은 엔비디아와의 협업, 포티투닷·모셔널에 대한 투자, 웨이모와의 파트너십, 국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핵심 활동으로 꼽았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현대차가 기존 자체 NPU(신경망처리장치) 개발을 중단하고 엔비디아 DRIVE Hyperion 아키텍처를 전면 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플랫폼은 레벨 2에서 레벨 4 자율주행까지 단계적 확장이 가능하며, 엔비디아는 한국에 26만 개 GPU 공급을 약속했다. 웨이모와의 협력을 통해서는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생산한 아이오닉5에 자율주행 특화 사양을 장착하는 방식으로 실도로 데이터를 확보한다. 구글 딥마인드와의 피지컬 AI 인프라 협력도 병행된다.
무뇨스 사장은 정의선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함께한 이른바 ‘깐부 회동’을 직접 언급하며 “서울 한 식당에서의 만남이 실질적 협력으로 이어졌다”고 강조했다. CES 2026 이후 현대차 시가총액은 120% 상승하며 최초로 100조 원을 돌파했다.
아틀라스, 공장으로 간다…2028년 로봇 연 3만 대 체제
로보틱스 분야에서는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실제 생산 현장에 투입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 중이다. 현대차는 2028년까지 연간 3만 대 규모의 로봇 생산 체계 구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는 업계에서도 도전적인 목표로 평가된다. 자율주행 로봇의 상용화 난이도는 높은 수준이지만, 구체적 수치와 시한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것은 시장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R&D 역량 강화를 위해 만프레드 하러 사장을 R&D 본부장으로, 박민우 박사를 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 CEO로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역별 맞춤 공략…2030년 글로벌 생산능력 120만 대 확대
통상 리스크 대응을 위한 현지화 전략도 구체적 수치와 함께 제시됐다. 현대차는 2030년까지 그룹사 기준으로 글로벌 생산능력을 연간 120만 대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 신공장의 본격 가동과 함께 하이브리드(HEV) 현지 생산도 시작되며, 인도·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에 신규 생산 거점을 구축한다.
지역별 신모델 전략도 공격적이다. 중국에서는 향후 5년간 20종의 신차를 투입하고 연간 50만 대 판매를 목표로 삼았다. 인도에서는 10년간 26개 신모델을 투입하며 내년 제네시스 브랜드 진출도 검토 중이다. 유럽에서는 18개월 안에 5종을 출시하고, 북미에서는 올해 투싼·엘란트라를 선보인 뒤 2027년부터는 주행거리 600마일(약 965km) 이상의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출시할 예정이다.
2025년 글로벌 판매량 414만 대와 사상 최대 매출이라는 견고한 실적을 기반으로, 현대차는 전통적 완성차 업체에서 AI·로보틱스·자율주행을 아우르는 첨단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 성패는 동맹 기업들과의 기술 협력이 실제 차량과 로봇에 얼마나 빠르게 구현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