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의 한국 공습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BYD(비야디)가 진출 11개월 만에 누적 판매 1만 대를 돌파하며 수입차 시장에서 ‘최단기 1만 대 클럽’이라는 전례 없는 기록을 세우자, 지커(Zeekr)와 샤오펑(Xpeng) 등 중국 신흥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잇따라 한국행을 서두르고 있다.
단순한 가격 경쟁을 뛰어넘어 고급 라인업과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전면에 내세운 ‘2차 공습’이다. 국내 전기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가운데, 현대차·기아의 ‘안방 수성전’도 한층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1분기 전기차 판매 155% 급증…중국 브랜드엔 ‘황금 시장’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8만 7,683대로 전년 동기 대비 155.8% 급증했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인한 고유가 기조 장기화와 정부의 친환경 정책 확대가 맞물린 결과다.
이 같은 폭발적 성장세가 중국 업체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신호로 읽힌다. 중국 내수 시장은 정부 보조금 축소와 업체 간 가격 경쟁 심화로 수요가 둔화되고 있어, 한국은 ‘내수 침체를 돌파할 전략 시장’으로 부상했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통하면 글로벌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통한다”는 상징성이 중국 업체들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다.
지커·샤오펑, 프리미엄·IT로 ‘승부수’

지리(Geely) 그룹의 프리미엄 순수 전기 브랜드인 지커는 중형 전기 SUV ‘7X’의 국내 인증을 진행 중이며,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브랜드 갤러리’를 열고 고성능 슈퍼 왜건 ‘001 FR’, 플래그십 MPV ‘009’, 대형 SUV ‘9X’ 등 핵심 라인업을 선보였다. 001 FR은 4모터 AWD 구성으로 시스템 출력이 약 1,265마력에 달하며 0→100km/h 가속이 약 2.0초 수준으로 알려진 고성능 모델이다.
지커는 연내 전국 14개 전시장과 11개 서비스센터를 독자 구축할 계획이다. 수입차 구매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인 AS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소하겠다는 전략이다. 샤오펑 역시 지난해 한국 법인을 설립하고 내년 출시를 목표로 인증 작업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중형 전기 SUV ‘G6′(CLTC 기준 최대 약 755km)와 자율주행 기술을 탑재한 플래그십 세단 ‘P7’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체리자동차, 그리고 전기 세단 ‘SU7’으로 돌풍을 일으킨 샤오미도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BYD가 증명한 공식, ‘가격+서비스’…프리미엄은 또 다른 게임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BYD는 올해 4월까지 전년 동기 대비 983.4% 증가한 5,991대를 판매해 수입차 시장 4위에 올랐다. 2,000만~4,000만 원대 중심의 가격 전략과 자체 보조금 지원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생산되는 테슬라 모델 Y·모델 3의 꾸준한 판매가 “중국산=저품질”이라는 부정적 인식을 완화한 것도 BYD 성공의 토양이 됐다.
그러나 지커·샤오펑이 겨냥하는 프리미엄 시장은 다른 차원의 싸움이다. 독일 3사와 제네시스가 장악한 이 시장에서 한국 소비자들은 브랜드 헤리티지, 리세일 밸류(중고차 가치), AS 품질을 까다롭게 따진다. 스펙과 가격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같은 가격대에 독일 브랜드가 있다면 소비자가 굳이 중국 브랜드를 선택할 유인이 약해진다”고 지적한다.
이에 맞서 현대차와 기아는 목적기반모빌리티(PBV) ‘PV5’, 스타리아 전동화 모델, 제네시스 플래그십 전기 SUV ‘GV90’ 등으로 대응 라인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전환을 가속하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전 세계 어느 회사라도 배울 게 있으면 배워야 한다. 더 많이 배워서 고객들이 좋아할 수 있는 기능과 상품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중국 전기차 공세를 정면승부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BYD가 ‘가성비’로 한국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지커와 샤오펑은 ‘품격과 기술’로 그 문을 더 넓히려 한다. 한국 전기차 시장의 패권을 둘러싼 중국 브랜드의 도전과 국내 완성차 업계의 응전은 이제 본격적인 2라운드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