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인이 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은 시대다. 삼성전자가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26’에서 금상 2개를 포함해 총 77개의 상을 받았다고 25일 밝혔다. 1953년 시작돼 레드닷,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상으로 꼽히는 이 공모전에서, 주목할 점은 단순히 수상 개수가 아니다. 삼성이 선택한 디자인 철학의 변화다.
이번 수상작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지속가능한 가전 소모품 선행 콘셉트’다. 가전제품 생산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을 정교하게 재가공해 가전 소모품 소재로 되살렸다. 여기에 반영구 사용, 재활용, 일반 폐기물 등 후처리 방식별로 다른 색상을 적용해 소비자가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이 콘셉트는 미국 IDEA 2024에서도 금상을 받았다. 국제 디자인계가 연이어 인정한 셈이다.
오브제형 와이파이 스피커 ‘뮤직 스튜디오 5’ 역시 금상을 받았다. 구와 점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강력한 오디오 성능과 인테리어 미학을 동시에 구현했다. 제품이 단순히 ‘기능하는 도구’를 넘어 ‘공간을 채우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 반영됐다.
제품 너머, ‘경험’을 디자인하다
삼성이 받은 77개 수상작의 분포를 보면 제품(39개) 외에 UX 14개, 콘셉트 16개, 커뮤니케이션 5개, 서비스 디자인 3개 등 비물리적 영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모바일 AI에 최적화된 ‘One UI 7’, 집안 가전의 상태와 사용 패턴을 분석해 최적 솔루션을 제안하는 ‘홈 인사이트’ 같은 소프트웨어 디자인이 포함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와 서비스가 우수 디자인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하드웨어 측면에서도 변화가 뚜렷하다. 역대 갤럭시 S 시리즈 중 가장 얇은 5.8mm 두께의 ‘갤럭시 S25 엣지’는 163g에 불과하다. 포터블 프로젝터 ‘더 프리스타일+’는 굴곡이나 모서리 같은 불규칙한 표면에도 최적 화면을 제공한다. 기술력이 곧 디자인 자유도를 결정하는 시대임을 보여준다.
환경에서 찾은 미래 경쟁력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의 지속가능성 콘셉트가 연이어 주요 상을 받는 것에 주목한다. 한 디자인 전문가는 “과거엔 심미성과 기능성이 디자인의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환경적 책임까지 포함된다”며 “소비자들이 제품을 선택할 때 기업의 환경 철학을 중요하게 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iF 디자인 어워드는 제품, 패키지, 커뮤니케이션, 콘셉트, 인테리어, 건축, 서비스 디자인, UX, UI 등 9개 부문에서 디자인 차별성과 ‘영향력’을 종합 평가한다. 단순히 아름다운 디자인이 아니라, 사회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평가 기준이란 의미다.
한국 디자인, 글로벌 표준을 만들다
삼성전자 마우로 포르치니 최고디자인책임자(CDO)는 “디자인은 제품이나 고객 경험을 넘어 사람들의 감정과 일상에 스며드는 경험을 만드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항상 사람을 중심에 두고 더욱 몰입감 있는 고객 경험을 고도화하고 지속 확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수상은 한국 기업이 글로벌 디자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폐기물을 소재로 활용하는 순환경제 콘셉트, AI 기반 사용자 경험 설계, 초경량·초슬림 하드웨어 구현 등은 모두 앞으로 업계가 나아갈 방향이다. 디자인이 단순히 겉모습을 꾸미는 작업이 아니라, 기업의 가치관과 미래 전략을 담는 그릇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