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자지구 재건을 위해 100억 달러(약 14조원) 규모의 자금과 함께 2만명 규모의 국제안정화군(ISF)을 투입하는 대규모 평화작전을 공식화했다. 19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가자지구 ‘평화위원회’ 창립 회의에서 발표된 이번 계획은 중동 지역 평화유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다국적 안정화 작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특히 ISF 사령관 재스퍼 제퍼스 미 육군 소장이 제시한 장기 병력 구조는 ISF 2만명과 민간 경찰 1만2천명을 합친 총 3만2천명 체계로, 가자지구를 5개 구역으로 나눠 각 구역마다 1개 여단씩 배치하는 전략이다. 초기에는 이집트와 인접한 라파 구역부터 배치를 시작하며, 인도네시아(8천명 이상), 모로코, 카자흐스탄, 코소보, 알바니아 등 5개국이 첫 병력 제공국으로 나섰다.
한국은 48개 참관국 중 하나로 이날 회의에 대표를 파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주최할 가자 지원 모금 행사에 한국, 필리핀, 싱가포르 등과 함께 참석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백악관은 이날 참석국이 공식 전체 회원국이 아닌 회의 대표 파견국 명단임을 분명히 했다.
5개 여단 구역 배치, 냉전 이후 최대 규모 다국적 평화작전
ISF의 3만2천명 체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자지구의 지정학적 특성을 반영한 전략적 설계다. 제퍼스 소장이 밝힌 5개 구역 배치 계획은 가자 북부부터 남부 라파까지 전 지역을 안정화 작전 범위에 포함시킨다는 의미다. 구역당 1개 여단(보통 3천~5천명 규모) 배치는 각 지역에서 독립적인 작전 수행이 가능한 전투력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1990년대 보스니아 평화유지군(IFOR·SFOR)이나 2000년대 아프가니스탄 국제안보지원군(ISAF)과 비교해도 밀도 높은 병력 배치다. 가자지구의 좁은 면적을 고려하면 매우 조밀한 배치로 보인다. 이는 도시 치안 안정화와 무장 세력 억제라는 이중 임무를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작전 환경의 복잡성을 반영한 것이다.
병력 제공국 구성도 주목할 만하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로서 8천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해 이슬람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 엿보인다. 모로코와 카자흐스탄은 중동·중앙아시아의 온건 이슬람 국가들이며, 코소보와 알바니아는 발칸 지역 평화유지 경험을 보유한 국가들이다. 이집트와 요르단은 경찰 훈련을 맡아 아랍권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한다.
190억 달러 모금, 그러나 지속 가능성은 미지수
재정 규모도 전례 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100억 달러 단독 지원에 카자흐스탄, UAE, 사우디 등 9개국이 70억 달러를 약속했고,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의 20억 달러까지 합치면 초기 모금액만 최소 19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 FIFA가 목표로 하는 7500만 달러와 일본 주최 모금 행사까지 더해지면 총 규모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국방 전문가들은 장기 작전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100억 달러는 2주치 전쟁 비용”이라며 평화가 저렴하다고 강조했지만, 3만2천명 규모의 다국적군을 수년간 유지하는 비용은 초기 재건비와 별개의 문제다. 2026년 1월 미국이 유엔 산하 기구를 포함한 66개 국제기구 탈퇴와 3억7천7백만 달러 인도 지원 삭감을 단행한 상황에서, 평화위원회가 유엔을 “감시”하는 기구로 위치한 점도 장기 협력 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의 참관국 지위는 직접적 병력 파병 의무는 없지만, 향후 재건 사업 참여와 인도적 지원 등을 통한 기여 압력은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가 일본 주최 모금 행사에 한국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은 한국의 재정적 기여를 기대한다는 신호로 읽힌다.
ISF의 실제 전투력과 임무 범위가 관건
ISF의 성패는 결국 실제 작전 수행 능력에 달려 있다. 제퍼스 소장은 ISF의 임무를 “치안 환경 안정화”와 “민간 통치 가능”으로 규정했는데, 이는 전통적인 평화유지(peacekeeping)를 넘어 평화 강제(peace enforcement) 수준의 전투력을 요구할 수 있다. 가자지구에는 여전히 하마스 잔존 세력과 다양한 무장 조직들이 존재하며, 이들과의 교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국적군 특유의 지휘 통합 문제도 변수다. 5개국 병력이 각자의 교전 규칙(ROE)과 작전 제한사항을 가진 상태에서 긴급 상황에 통일된 대응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이슬람 국가 병력들이 이스라엘과 인접한 지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구도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트럼프가 평화위 회의와 동시에 이란 핵 문제를 언급하며 “앞으로 열흘 안에 결과를 알 것”이라고 경고한 점도 주목된다. 2025년 6월 이란 핵 시설 기습 타격 이후 중동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한 상황에서, 가자 평화작전은 더 큰 지역 안보 구도 속에서 작동해야 한다는 복잡성을 안고 있다.
결국 ISF의 2만명 병력과 190억 달러 재원은 가자 안정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치적 합의, 지역 주민의 협력, 장기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소프트 파워 없이는 군사력만으로 지속 가능한 평화를 담보할 수 없다. 한국을 포함한 참관국들은 이제 재정 기여와 재건 참여라는 구체적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