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가 3만 원짜리 제주 천혜향 선물세트가 할인 행사 기간에 갑자기 ‘정가 11만4천 원’이 됐다. 표시 할인율은 35%에서 84%로 껑충 뛰었지만, 실제 판매가는 고작 2천 원 내려간 1만7천900원이었다.
이른바 ‘가짜 세일’이 국내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부 조사로 공식 확인됐다.
설 선물세트 8개 중 1개가 ‘정가 부풀리기’
한국소비자원과 공정거래위원회는 5월 19일 온라인 쇼핑몰 가격 할인 표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쿠팡·네이버·G마켓·11번가 등 4개 플랫폼에 입점한 1천335개 상품을 분석한 결과다.
설 선물 인기 상품 800개(플랫폼별 200개)를 행사 전후로 분석했더니, 12.8%(102개)가 할인 기간에 정가를 올려 할인율을 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중 2.0%(16개)는 정가를 행사 전의 2배 이상 부풀렸고, 최대 3배 이상 올린 사례도 확인됐다.
플랫폼별로는 쿠팡이 23.0%로 가장 높았고, 네이버 13.0%, G마켓 9.0%, 11번가 6.0% 순이었다. 소비자 불만도 꾸준히 늘어, 2022년부터 2025년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온라인 할인 광고 관련 상담은 총 606건으로, 2022년 144건에서 지난해 180건으로 증가했다.
‘지금만 특가’ 타임딜도 믿을 수 없다
올해 1월 진행된 시간제한 할인 상품 535개를 행사 종료 후 1일·7일 뒤 추적한 결과도 충격적이었다. 20.2%(108개)는 행사가 끝난 뒤에도 가격이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더 낮아진 것으로 확인됐다.
‘지금 사지 않으면 손해’라는 긴박감을 유발하는 타임딜 자체가 기만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항목에서는 네이버가 37.0%로 가장 높았고, 11번가 35.4%, G마켓 14.3%, 쿠팡 2.2%가 뒤를 이었다.
설 선물세트 조사에서는 쿠팡의 정가 인상 비율이 가장 높았던 반면, 타임딜 사후 가격 유지·하락 비율은 네이버와 11번가가 높게 나타나 플랫폼별로 문제의 양상이 다르게 드러난 점도 주목된다.
선진국은 이미 ‘가짜 할인’ 규제 선행
이번 문제의 핵심은 ‘정가’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온라인 시장에서 정가는 실제 거래와 무관하게 할인율을 크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다.
EU는 이미 2019년 ‘옴니버스 지침’을 통해 할인 광고 시 지난 30일간 최저가를 반드시 함께 표시하도록 의무화했다. 미국 FTC도 ‘정상가’는 실제로 상당 기간 거래된 가격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국내법은 허위·과장 광고 금지 조항은 있으나, EU 수준의 구체적인 기준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일 업체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로 본다. 높은 할인율을 보여줘야 검색 상단에 노출되는 알고리즘 구조 탓에, 입점업체 입장에서는 정가를 올려서라도 할인율을 키우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압박이 크다는 것이다.
권고 수용했지만 ‘자율 개선’만으론 역부족
공정위와 소비자원은 한국온라인쇼핑협회 및 4개 플랫폼과 두 차례 간담회를 열고, 상품 상세 페이지에 종전 거래가격 등 가격 형성 이력을 구체적으로 표시하도록 권고했다. 4개 플랫폼은 권고를 수용하고 이행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소비자단체 일각에서는 “자율 규제만으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과거 리뷰 조작, 검색 알고리즘 공정성 논란에서도 자율 개선 약속이 반복됐지만 관행이 되살아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법 위반 소지가 확인된 입점업체에 자진 시정을 유도하고, 동일·유사 행위 반복 시 표시광고법 등에 따라 제재할 방침이다. 할인율 숫자보다 실질적인 가격 투명성이 요구되는 시점, 소비자들도 큰 할인율이 붙은 상품일수록 다른 플랫폼과 가격을 비교하고 실제 거래 이력을 따져보는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