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 6일간 최대 500억 달러. 미국이 이란과의 분쟁에서 쏟아부은 전쟁 비용이다. 수천 달러짜리 자폭 드론과 수백만 달러짜리 첨단 미사일이 뒤섞인 비대칭 소모전, 이 새로운 전쟁 방정식이 한국 방산에는 기회의 문을 열어주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25일 ‘최근 중동 전쟁에 따른 한국 방산 시장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현재의 전쟁 양상 변화가 한국 방위산업에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비대칭 소모전, K방산의 구조적 강점과 맞아떨어지다
이번 분쟁의 핵심은 ‘소모’다. 저가 드론과 고가 미사일이 동시에 쏟아지는 전장에서는 물량 공급 능력과 다층 방어 시스템이 전략의 핵심이 된다.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는 바로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다.
KAMD는 조기경보 레이더(그린파인), 중앙 지휘통제 플랫폼(작전통제소), 중·고고도 요격 수단(천궁-II·L-SAM)을 하나로 묶은 통합 다층 방어 시스템이다. 탐지부터 요격까지 패키지로 제공되는 이 구조는 방공망 구축이 시급한 중동 국가들의 수요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는 평가다.
가격 경쟁력도 무기다. 한국 무기체계는 미국산 대비 초기 도입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도 합리적인 운영·유지 비용 구조를 갖췄다. 장기 소모전에서 지속적인 물량 공급이 요구될 때, 한국의 견고한 제조 생태계는 즉각 대응이 가능한 구조를 뒷받침한다.
천궁-II, 실전에서 신뢰를 쌓다
K방산의 신뢰성은 이미 수치로 증명됐다. UAE가 도입한 천궁-II는 이란의 공격 요격 과정에서 약 90%의 요격률을 기록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실전 데이터는 잠재 수입국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가장 강력한 마케팅이 됐다.
수출 규모도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UAE는 2022년 천궁-II 10개 포대를 계약해 최초 인도를 완료했고, 사우디아라비아(2024년, 10개 포대)와 이라크(2024년, 8개 포대)도 잇따라 계약을 맺었다. 기존 수출 물량은 약 13조 원에 육박한다. 키움증권 이한결 연구원은 “이란 사태가 진정된 이후에도 중동 지역 긴장감은 단기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며, 중동 국가들의 국방력 강화 과정에서 국내 방산 업체의 중동 사업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LIG넥스원은 천궁-II 도입국을 중심으로 장거리 지대공유도무기(L-SAM) 수주 협상에도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궁-II와 L-SAM이 결합되면 K방공망의 통합 운용 효율성은 한층 높아진다.
락인효과 전략과 기술 유출 리스크, 두 갈래 과제
보고서는 한국 방산이 글로벌 시장 입지를 확대하려면 세 가지 축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첫째, 중동 실전 데이터를 장사정포 요격체계(LAMD) 개발에 즉각 반영해 기술 신뢰성을 높이는 것이다. 둘째, 현지 공동 생산·MRO·즉각 전략화 솔루션을 묶은 포괄적 협력 모델로 구매국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셋째, 권역별 MRO 거점을 확보해 구매국 방산 생태계에 한국 표준을 이식하는 ‘락인효과’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다만 보고서는 수출 확대가 기술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경고한다. 정부는 현지 보안 실태 점검 의무화와 AI 기반 기술 유출 조기 경보 체계를, 기업은 설계 단계부터 역설계 방지 기술을 적용해 보안성을 지속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기준 세계 방산 시장 점유율 3%(세계 9위), 빅4 기업 매출 40조 원, 수주잔고 100조 원에 육박하는 K방산은 2035년 글로벌 방산 시장이 6조 달러로 확대되는 시점에서 아시아 시장의 25% 점유를 목표로 달리고 있다. 비대칭 소모전이 만들어낸 수요와 실전에서 검증된 기술력, 그리고 포괄적 협력 모델이 맞물릴 때 K방산의 다음 도약이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