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내 에너지 공급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정부가 자원안보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상향하고 국민과 기업의 자발적 동참을 호소하는 가운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잇따라 에너지 절감 체제에 돌입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국무회의에서 “배달 용기부터 의료 도구까지 일상에서 석유화학 제품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다”며 “외환 위기나 코로나 국난을 극복한 것처럼 이번 위기도 모든 국민이 마음과 뜻을 모으면 얼마든 이겨낼 수 있다”고 밝혔다.
HD현대, 전 그룹사에 절감 공문…엘리베이터·조명까지 통제
HD현대는 23일 전 그룹사와 사업장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감 방안을 수립해 공지했다. 자동차 번호 끝자리와 날짜 끝자리가 같은 날에 해당 차량 운행을 자제하는 ‘자동차 10부제’를 자율 참여 방식으로 시행한다.
사무용품·비닐·플라스틱 등 석유화학 파생 제품 사용 축소도 병행한다. 저층부 엘리베이터 이용 자제, 점심시간 조명 소등, 퇴근 시 PC·모니터·프린터 전원 차단 등 세부 지침도 함께 안내됐다. 생산 현장에서는 설비 유휴시간 대기 전원 차단, 압축공기와 가스 점검 강화, 불필요한 공회전 최소화 등이 추진된다.
HD현대 관계자는 “정부의 에너지 절약 방침에 동참하고자 공문을 안내했다”며 “향후에도 에너지 절약 방안을 적극 수립하고 권고할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포스코는 ‘경험자’…2008년부터 차량 부제 운영
이번 에너지 절감 움직임이 산업계의 완전한 신풍경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이미 2009년부터 수원 본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차량 10부제를 상시 운영해왔고, 포스코는 2008년 차량 5부제를 도입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두 기업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 에너지 위기를 겪으며 절감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재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당시 경험의 ‘재활성화’ 국면으로 해석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점심시간(오전 11시 30분~오후 1시)과 퇴근 이후(오후 8시)에 사옥을 일괄 소등하고, 조명 전체를 LED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정부 ‘원전 재가동 + 재생에너지 지원’ 병행…장기화 대비 체계 가동
정부는 민간의 자발적 절감 요청과 함께 공급 측면 대응도 병행하고 있다. 현재 정비 중인 원전 5기를 2026년 5월까지 재가동하고, 재생에너지 금융 지원 규모를 총 6,480억 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공공기관에는 차량 5부제를 의무화하되, 장애인·임산부·미취학아동 동승 차량 등에는 예외를 적용한다.
재계 관계자들은 “중동 사태의 전개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서 “에너지 위기가 심화할 경우 기업들의 자발적인 절감 노력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절감 기조가 일시적 정부 대응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산업 구조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