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승인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가 올해 구체적인 이정표를 따라 본격 추진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과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2월 3일(현지시간) 워싱턴 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과 원자력, 조선 분야의 협력이 2026년 중 실질적 성과를 내도록 긴밀히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2025년 10월 서울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한미 안보 협력의 핵심 과제들이 외교 채널을 통해 구체화 수순에 들어간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2월 26일 발표한 상호관세 인상(15%→25%) 문제는 “안정적 상황 관리”라는 원론적 합의에 그쳤다. 안보 협력과 통상 압박이 맞물린 복잡한 구도 속에서, 한국 정부는 국방비 GDP 3.5% 증액 공약 이행을 지렛대로 삼아 관세 완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양국이 발표한 북한 정책의 온도차—한국은 ‘대화’, 미국은 ‘비핵화’—도 향후 조율이 필요한 대목이다.
핵추진잠수함 건조, 연내 구체 로드맵 나온다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는 핵추진 잠수함 협력의 가속화다. 조 장관은 루비오 장관에게 “금년 중 구체 이정표에 따라 원자력, 핵추진잠수함, 조선 등 핵심 분야에서 협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주도적 역할을 당부”했고, 루비오 장관은 “관련 부처를 독려해 조속히 실질적 논의가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화답했다. 2025년 10월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공식 승인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한국 해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전략 자산이다. 재래식 디젤 잠수함과 달리 핵추진 잠수함은 무제한 잠항이 가능해 대잠전과 전략 타격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이번 승인은 한국을 핵심 동맹국으로 격상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프랑스·영국·호주 수준의 기술 이전이 이뤄질 경우, 한국 조선업계가 글로벌 핵추진 잠수함 시장에 진출할 기회도 열릴 수 있다. 실제로 양국은 조선 분야를 별도 협력 의제로 설정했는데, 이는 한국의 조선 기술력과 미국의 핵추진 기술을 결합한 산업 협력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국방비 GDP 3.5% 증액, 관세 협상 지렛대로
한국은 2025년 10월 정상회담에서 2035년까지 국방비를 GDP의 3.5%로 증액하겠다고 공약했다. 현재 수준에서 3.5%로의 증액은 연간 수조 원 규모의 추가 예산을 의미한다. 이는 미국 방산업체의 대규모 수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 장관이 회담에서 “한미 간 관세 합의와 대미 투자 이행을 위한 국내적 노력”을 설명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2월 26일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에서 25%로 재인상하겠다고 발표한 상황이다. 2025년 10월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관세 협상이 불과 몇 달 만에 뒤집힐 위기에 처한 것이다. 외교부는 “통상 당국 간 원활한 소통과 협의가 이어지도록 외교 당국 차원에서도 계속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해법은 제시되지 않았다. 미 국무부가 공식 발표에서 관세 논의를 언급하지 않은 것도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외교 라인과 별개로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안보 협력 vs 통상 압박, 패키지 딜의 명암
한미 양국의 발표에서 드러난 미묘한 차이는 향후 협력의 불확실성을 암시한다. 한국 외교부는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대화 복귀”를 강조했지만, 미 국무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다. 대화와 압박 중 어느 쪽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한미일 공조의 실행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토미 피곳 국무부 수석부대변인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한미일 3자 협력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한미 간 온도차는 여전히 존재한다.
핵추진 잠수함 협력과 관세 압박이 맞물린 복잡한 구도 속에서, 국방비 증액 이행이 관세 완화의 지렛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025년 정상회담 당시 한국경제인협회가 “양국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달성한 중요한 외교·경제 성과”라고 평가했던 관세 협상이 재협상 국면에 들어설 경우, 반도체·자동차·철강업체는 물론 방산업체들도 불확실성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번 한미 외교장관 회담은 핵추진 잠수함과 원자력 협력이라는 안보 분야의 긍정적 모멘텀을 확인했지만, 관세 문제와 북한 정책의 온도차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조현 장관과 루비오 장관이 합의한 “안정적 상황 관리”와 “긍정적 기류 확산”이 실제 성과로 이어지려면, 한국 정부의 국방비 증액 이행과 미국 내 관련 부처 간 조율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2026년 연내 구체적 이정표가 제시될 핵추진 잠수함 건조 일정이 한미동맹의 새 이정표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