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값 내렸더니 더 쓴다’…석유 최고가격제, 역설의 덫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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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최고가격제 4차 가격 인상 검토
서울의 한 주유소 / 연합뉴스

물가를 잡으려 도입한 정책이 오히려 소비를 끌어올리고 있다. 정부가 국제유가 급등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한 석유 최고가격제가 ‘가격 신호 왜곡’이라는 역설적 부작용을 드러내면서, 당정이 4차 가격 고시(4월 24일)를 앞두고 제도 전반의 재검토에 착수했다.

정부 자료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3월 4주 기준 휘발유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5%, 경유는 약 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춰 놓자, 절약 유인이 줄어든 소비자들의 수요가 오히려 늘어나는 구조가 현실화된 셈이다.

대통령도 인정한 ‘정책 딜레마’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4일 국무회의에서 “가격을 내려놓는 게 100% 잘한 일이냐는 반론은 일리 있는 지적”이라며 “생산 원가와 실제 판매가의 차액을 정부가 다 보전해 주게 되는데, 그게 다 국민 세금”이라고 언급했다. 가격 억제 정책의 재정 부담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정책 조정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 김용범 정책실장도 페이스북을 통해 “가격 신호 왜곡 등의 대가가 수반될 수 있지만, 정부는 단기 충격 완화를 선택했다”며 “구조를 이해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훈식 비서실장 역시 “정책은 유지하되 가격 조정 여부는 토론 중”이라고 설명했다.

석유 최고가격제 4차 가격 인상 검토
서울의 한 주유소 / 연합뉴스

정유사 손실 1조2000억…보전 기준엔 ‘시각차’

수요 측면의 역설과 함께, 공급 측면에서도 정유업계의 손실 문제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3월 13일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4주간 정유 4사의 매출 손실은 약 1조 2000억원 규모에 달한다. 국제 석유제품 가격 상승분을 국내 판매가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데 따른 기회비용이 누적된 결과다.

손실 보전 범위를 둘러싼 정부와 업계의 입장은 뚜렷하게 갈린다. 정유업계는 국제 가격 기준의 판매를 가정한 ‘기회비용’까지 보전 범위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원가와 적정 이윤 중심으로 산정하겠다는 방침으로, 산업부는 회계·법률 전문가가 참여하는 정산 절차를 통해 적정 손실을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정유사별 원유 도입 시점과 재고 평가 방식이 달라 동일 기준 적용이 쉽지 않다는 점도 추가적인 변수로 꼽힌다.

‘소비 증가 일시적’ vs. ‘추세 현실화’…해석 엇갈려

석유 최고가격제 4차 가격 인상 검토
서울의 한 주유소 / 뉴스1

소비 증가 데이터를 둘러싼 해석도 엇갈린다. 청와대는 기간을 확대해 분석하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3주간 휘발유 판매량의 전년 동기 대비 증가율은 0.3%에 불과했으며, 경유는 오히려 감소했다고 반박했다. 산업부 역시 “특정 시점이 아니라 전체 소비 흐름의 추세를 봐야 한다”며 단기 수치로 정책 효과를 단정하기 이르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 억제 시 소비 증가와 재정 부담 확대가 나타나는 반면, 가격 현실화 시에는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는 구조”라며 “이처럼 상반된 효과가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 최고가격제를 둘러싼 정책 딜레마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는 24일 4차 가격 고시를 통해 정부가 어느 수준까지 가격을 조정하느냐에 따라 제도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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