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2026년 1월 28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자체 반도체 제조 시설 ‘테라팹’ 건설 계획을 재차 강조하며 반도체 업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테슬라는 현재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AI칩 생산을 전량 위탁하고 있어, 테라팹이 현실화될 경우 양사의 핵심 고객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머스크 CEO는 “삼성전자, TSMC, 마이크론 등 파트너들의 생산량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가정해도 부족하다”며 “3~4년 내 발생할 제약 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테라팹을 건설해야 한다”고 밝혔다. 테라팹은 로직 반도체·메모리·패키징 공정을 모두 갖춘 통합 제조 시설로, 테슬라가 기존에 추진한 배터리 수직계열화 전략을 반도체 분야로 확장한 개념이다.
특히 머스크 CEO는 “AI 칩이 없으면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는 쓸모없어지기 때문에 반도체는 테슬라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며 절박함을 드러냈다. 테슬라는 2026년 공장 투자에만 200억 달러(약 29조 원) 이상을 투입할 계획이며, 현금 및 투자 자산으로 440억 달러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재정적 실행 가능성도 갖춘 상태다.
“예술의 경지” vs “머스크라면 가능”…엇갈린 평가
그러나 업계는 테라팹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최근 대만 방문 중 “첨단 칩 제조는 극도로 어려울 것”이라며 “TSMC가 수행하는 작업을 해내기 위한 공학, 과학, 예술적 역량은 정말로 달성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황 CEO는 “인텔 파운드리 사업부 같은 기업조차 여전히 고전하고 있다”며 파운드리 진입 장벽이 높다는 점을 강조했다.
TSMC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첨단 파운드리는 대규모 자본과 장기간의 구축 시간이 동시에 필요한 산업”이라며 “공정 운영 전문 인력들이 밤낮으로 매달려도 어려운 것이 파운드리”라고 지적했다. IT매체 톰스하드웨어는 “사업의 엄청난 복잡성을 고려할 때 테라팹의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특히 머스크 CEO가 2나노 공정부터 바로 진입하겠다는 구상은 더욱 비현실적이라는 분석이 많다. 2나노 공정은 현재 삼성전자·TSMC·인텔만 진입한 초미세 공정으로, 기술 난도가 급격히 높아진 구간이다. 다만 반도체 전문가들은 “머스크가 그간 SpaceX 재사용 로켓, 테슬라 대량생산 등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사례가 많아 허황된 계획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 위기인가 기회인가
테라팹 구상이 삼성전자 등 기존 파운드리 업체에 미칠 영향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IT매체 WCCF테크는 “테슬라가 반도체 제조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파운드리 파트너들과 협력하는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테슬라는 최근 AI5·AI6 칩을 삼성전자와 TSMC에서 병행 생산하는 전략을 확인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머스크 CEO의 발언이 실제 팹 건설보다는 선단 공정 물량 확보를 위한 협상 카드일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2나노급 물량을 선점하려 할수록 삼성 파운드리의 협상 테이블이 다시 주목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장기적으로는 테라팹이 현실화될 경우 자동차·로봇·우주 발사체 중심으로 공정·소재·패키징 라인이 재편되며 파운드리 생태계 전반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머스크 CEO의 테라팹 선언은 테슬라의 반도체 수급 위기 심각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삼성전자 등 기존 파운드리 업체들에게 공급 확대 압박을 가하는 이중 전략으로 해석된다. 업계는 향후 3~4년 내 테슬라의 구체적인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