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세입자가 있는 주택의 실거주 의무를 최대 2년 유예하겠다는 보완책을 발표하면서 ‘세 낀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2026년 2월 10일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세입자가 있는 경우 계약기간 동안 실거주하지 않아도 되고, 임대 기간을 고려해 최대 2년 범위에서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성북구에는 임차 기간이 2027년까지 남은 길음 현대 59.98㎡ 매물이 8억원에 나왔다.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세 낀 매물이 있냐는 문의가 많이 온다”며 “설 연휴가 지나고 물건이 더 나올 것 같다”고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3일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예고하며 약 3개월의 유예 기간을 부여한 이후, 매물 출회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다.
실거주 의무 2년 유예, 핵심은 ‘시간 벌기’
정부 보완책의 핵심은 기존 임대차 계약이 남아 있는 주택을 무주택자가 매수할 경우, 임차인 계약 만료 후 입주하면 된다는 것이다. 유예 기간은 시행령 개정 발표일인 2월 10일을 기준으로 적용되며, 최대 2년 내 반드시 입주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으로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부과된 ‘4개월 내 입주, 2년간 실거주’ 의무와 충돌하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기존에는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세입자가 퇴거를 거부하면 집주인이 매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일부 집주인들은 이사비 5,000만원을 제시했지만 세입자들이 응하지 않아 “팔고 싶어도 팔 수 없는” 역설적 상황에 놓였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이지만 임차가 빠지기 전까지 최대 2년간 전세를 끼고 매입할 수 있어 일부 거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서울 아파트 매물 6만건 돌파, 강남권 15% 급증
정부 발표 이후 서울 아파트 매물 출회에 속도가 붙고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월 10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6만417건으로, 2월 7일 6만건 돌파 이후 사흘 만에 276건이 증가했다. 연초(5만7,001건) 대비 5.9%, 이재명 대통령의 중과 유예 종료 발언이 있었던 1월 23일 대비 7.4% 늘었다.
지역별로는 강남구가 8,405건으로 가장 많았고, 서초구 6,981건, 노원구 4,559건, 송파구 4,272건이 뒤를 이었다. 송파구는 한 달 전 대비 24% 급증했으며, 강남·서초구도 각각 15% 이상 증가했다. 송파구 한강변 단지의 경우 2주 전 대비 매물이 50% 가까이 늘었다. 일부 급매물은 시세 대비 5,000만원에서 1억원까지 할인된 가격에 나오고 있다.
전문가 “거래 활성화까지는 시간 필요”
전문가들은 보완책이 매수세에 도움이 되겠지만, 실제 거래 활성화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신중한 전망을 내놨다. 김효선 KB국민은행 WM추진부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전세를 끼고 매입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면서 일부 거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최근 전세 계약을 맺었다면 매수 후 2~4년 후에나 입주할 텐데 계약이 이뤄질 리 없다”고 지적했다.
양지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계약갱신요구권으로 ‘세 낀 매물’ 퇴로를 열어주는 건 긍정적”이라면서도 “토지거래허가제가 갭투자를 방지하려고 만든 것인만큼, 유예 조치가 갭투자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대출 규제, 토지거래허가제도 등과 맞물려 현재 시장에 출회된 매물들이 소화될 때까지는 당분간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