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서 시작된 ‘영업이익 연동 성과급’ 불씨가 조선업까지 옮겨붙었다. HD현대중공업 노조가 연간 영업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안을 공식 확정하면서다.
노조가 요구안대로 실현될 경우, 2025년 영업이익 약 2조원을 전제로 하면 성과급 재원은 약 6000억원에 달한다. 조합원 1인당 최대 7500만원 수준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조선업계는 미국 조선소 인수, 친환경 선박 R&D, 중국과의 기술 경쟁 등 막대한 투자를 앞두고 있어, 이익의 고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떼어내는 방식에 강한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다.
SK하이닉스 10%에서 출발해, 조선업 30%까지
이번 논란의 출발점은 SK하이닉스다.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 속에서 노사가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구조적 합의를 도출하면서, 업종을 넘나드는 ‘비율 경쟁’이 시작됐다.
삼성전자 노조는 이를 기준점 삼아 15%를 요구하며 현재까지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요구하며 더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역시 5월 12일 대의원대회에서 영업이익 30% 성과급 배분과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을 포함한 요구안을 확정했다.
업계에서는 HD현대삼호가 비슷한 수준의 요구를 뒤따를 것으로 보고 있으며, 한화오션 노조 역시 성과급 지급 기준 개선을 요구 중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흐름이 조선업 전반으로 확산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투자 재원 vs 성과 배분…노사가 충돌하는 지점
조선업계의 부담은 반도체·자동차와 구조적으로 다르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데 이어 추가 조선소 인수를 검토 중이고, HD현대는 미국 사모펀드 서버러스 캐피탈과 손잡고 현지 조선소 인수 방안을 살피고 있다. 한미 조선협력 프레임인 MASGA 프로젝트 대응에도 대규모 자본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규제도 재무 압박을 키운다. IMO는 2050년 해운 넷제로를 목표로 탄소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고, EU 배출권거래제(ETS)도 2026년 이후 국제 해운을 완전 편입할 예정이다. 조선사들은 암모니아·메탄올·수소·SMR 등 다양한 친환경 추진 선박을 동시에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무 전문가들은 영업이익 대비 고정 비율 성과급이 제도화될 경우, 경기 하강기에 고정비성 인건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고, 설비투자·R&D 여력이 축소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노란봉투법에 하청 노조까지…이중 압박 구조
올해 3월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은 원청의 법적 책임 범위를 넓혔다. 원청이 실질적으로 지배·개입하는 경우 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어, 조선사들은 하청 노조와도 직접 교섭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한화오션 하청 노조는 올해 2월부터 전 노동자에게 동일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고, HD현대중공업 하청 노조도 원청과 동일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와 하청 노조가 동시에 성과급 상향을 압박하는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이 불황의 터널을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업황이 언제 꺾일지 모르는 상황이라 기업들이 굉장한 부담을 느끼는 게 사실”이라며 “하청 노조와도 교섭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통상 7~8월에 본격화되는 하투를 앞두고, 조선업계의 노사 갈등은 어느 때보다 높은 수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있다는 게 시장의 대체적인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