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무수익여신 급증
중소기업 연체율 악화
생산적 금융 동력 약화
경기 둔화가 길어지면서 은행권의 기업대출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른바 ‘깡통대출’로 불리는 무수익여신이 불과 2년 만에 50% 가까이 불어난 데다 연체율도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오르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줄이고 기업으로 돈을 돌리라는 정부의 ‘생산적 금융’ 주문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은 건전성·규제·과징금 부담까지 겹치며 “이러다 이자 수익도, 생산적 금융도 다 놓칠 수 있다”고 하소연한다.
기업 무수익여신 2년 새 48% 급증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기업 무수익여신 잔액은 3조6,404억 원에 달한다.
재작년 말 2조4,532억 원, 작년 말 3조304억 원이던 것과 비교하면 2년 만에 48.4% 늘어난 수치다. 올해 들어서만 20% 가까이 증가했다.
무수익여신은 3개월 이상 원리금이 연체된 대출과 이자가 발생하지 않는 여신을 합친 개념이다. 이자 수취가 사실상 어려워 ‘깡통대출’이라고 불린다.
특히 중소기업 부문의 악화 속도가 가파르다. 중소기업 무수익여신은 재작년 말 1조8,950억 원에서 작년 말 2조6,236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3분기 말에는 3조2,451억 원까지 불어났다. 올 들어서만 24% 증가했다.
중소기업 연체율, 가계보다 더 빠르게 악화
연체율 지표도 기업·중소기업 부문에서 더 나빠지는 흐름이다.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기업대출 평균 연체율은 0.42%로 2년 전보다 0.11%포인트 높아졌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 연체율이 0.26%에서 0.29%로 0.03%포인트 오르는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경기 회복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소기업 매출과 현금 흐름이 개선되지 못하자 상환 압박이 연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정부 정책 방향과 은행의 건전성 관리 목표가 서로 엇갈리며 ‘샌드위치’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명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손쉬운 이자 장사’를 자제하고, 기업대출·투자를 늘려 생산적 금융을 강화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여신을 늘릴수록 위험가중자산(RWA)과 충당금 부담이 커지고, 이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 등 밸류업 지표에도 악영향을 준다.
생산적 금융 주문 속에 규제·과징금까지 겹쳐
한편 가계대출은 당국의 규제 기조에 따라 내년에도 축소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기업대출 건전성이 빠르게 나빠지자 은행권에선 “생산적 금융을 밀어붙이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커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실제로 다수 은행은 부도 위험이 낮은 우량 대기업 위주로만 여신을 확대하는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이 경우 대기업에는 낮은 금리를, 중소기업에는 그만큼 더 높은 금리를 적용하는 왜곡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대규모 과징금 리스크까지 더해졌다. 은행권은 최근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조 단위 과징금 고지서를 받은 상태다.
일부 은행은 이미 자율배상으로 수천억 원을 지출했는데, 과징금까지 확정되면 추가로 수조 원에 달하는 충당금을 쌓아야 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에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산정 담합 의혹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예고한 과징금 역시 부담 요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 감축, 기업대출 확대, 생산적 금융, 포용금융, 밸류업까지 정부 당국이 요구하는 과제가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며 “건전성 규제와 과징금 부담이 겹치면 위험이 낮은 기업 위주로만 돈이 몰려, 정작 자금이 절실한 중소기업에는 자금줄이 더 마를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