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철수 2년 만에 상표권 재등록
‘헐값 매각’ 뒤 남은 바이백 조건 주목
현대차 “일반적 관행일 뿐” 신중 태도

현대자동차가 2023년 말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며 공장을 헐값에 매각한 지 약 2년 만에, 러시아 내 상표권을 대거 재등록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매각 조건으로 포함된 ‘바이백 옵션’의 만료 시점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이같은 행보가 시장 복귀의 신호탄인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 측은 재진출과는 무관한 통상적 조치라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나, 업계 안팎의 해석은 분분하다.
러시아서 철수했던 현대차, 상표권 다시 확보
현대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22년 3월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가동을 중단한 뒤, 2023년 12월 러시아 업체 아트파이낸스에 해당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내 지분 100%를 매각했다.
매각가는 단 1만 루블, 당시 환율 기준 약 14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계약에는 ‘2년 내 공장 재매입이 가능하다’는 바이백 조건이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지난 11월 17일(현지시간), 현대차가 이달 초 러시아연방지식재산서비스(로스파텐트)에 자사 로고를 포함한 다수의 상표를 등록했다고 보도했다.
등록 유효기간은 2034년까지다. 상표 등록을 통해 현대차는 현지에서 자동차 및 부품을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다시 확보하게 됐다.
앞서 현대차는 2024년 5월에도 ‘현대 ix10’, ‘현대 ix40’, ‘현대 ix50’ 등의 상표를 같은 기관에 등록한 바 있다. 해당 차량은 아직 출시되지 않은 모델로, 자동차뿐 아니라 예비부품과 액세서리 또한 등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시기 기아 역시 ‘기아 마이 모빌리티’, ‘기아 에디션 플러스’ 등 신규 상표 5건을 등록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인해 현대차의 복귀 가능성에 대한 관측이 커지고 있다. 바이백 권한의 행사 기한은 2025년 12월까지로, 시한 만료가 임박한 시점과 맞물려 상표 등록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상표권 등록, 복귀 준비일까…현대차는 ‘신중’
현대차는 상표권 등록에 대해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통상적 절차’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한국 자동차 업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상표 등록은 실제 진출 여부와 관계없이, 다른 기업이 무단으로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일반적인 사전 조치”라고 전했다.
현대차 관계자 역시 “특정 국가 진출과 무관하게,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권리를 유지하기 위한 절차의 일환”이라며 “러시아 재진출에 대한 공식 입장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현재 현대차는 러시아 내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애프터서비스만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상표권 재등록이 단순 방어적 조치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 떠난 자리에 중국차 급성장
현대차의 복귀가 현실화될 경우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경쟁 환경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는 한때 러시아 시장에서 2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했으며 2021년에는 기아와 함께 라다에 이어 각각 2·3위를 차지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북유럽과 동유럽을 연결하는 전략 거점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가 서방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의 수입 확대를 허용하면서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한국자동차연구원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체리, GWM, 지리 등 중국 브랜드의 러시아 내 점유율은 2021년 8%대에서 2024년에는 60.4%까지 급등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국 브랜드가 현대차가 떠난 자리를 거의 대부분 차지한 상황”이라며 “재진출을 하더라도 경쟁 환경, 비용 구조, 정책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현지서 ‘현대차’ 이름 달고 생산
현지 상황도 단순하지 않다. 현대차로부터 공장을 인수한 아트파이낸스의 자회사 AGR자동차그룹은 기존 현대차 모델인 ‘솔라리스’ 등을 그대로 생산하고 있다.
상표권이 현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만큼, 브랜드 보호 차원에서의 법적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공장을 넘긴 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시점, 현대차의 뜻밖의 행보가 다시금 러시아 시장을 향한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철수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은 ‘현대차’라는 이름, 그리고 다가오는 바이백 시한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