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가운데 정부가 보조금 지급 기준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나섰다. 단순한 차량 성능·가격 중심에서 국내 투자·고용·기술개발 기여도 중심으로 전환하는 이번 개편은 테슬라·BYD 등 수입 전기차를 사실상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에 파장이 크다.
올해 1분기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9.5% 증가한 8만 3,529대를 기록했다. 미·이란 전쟁 여파로 촉발된 고유가 흐름이 소비자들의 전기차 전환을 가속화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판매 급증 속에서 보조금 기준 개편이 맞물리며 수혜 기업과 피해 기업이 극명하게 갈리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산업기여도 반영…수입차 브랜드에 직격탄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하반기부터 전기차 보조금 산정 체계에 최근 3년간 국내 R&D 투자액, 직영 AS센터 운영 현황, 국내 전기차 연구시설 보유 여부 등을 반영하기로 했다. 총점 80점 이하 제조사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원천 제외된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테슬라와 BYD다. 테슬라는 올해 1분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334.8% 급증한 2만 970대를 판매하며 국내 시장점유율 약 25%를 확보했다. BYD도 분기 3,968대를 판매하며 월 1,000대 이상의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두 브랜드 모두 국내 생산시설과 R&D 거점이 사실상 전무해 새 기준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국산차도 희비 엇갈려…현대·기아 독주 구도 굳히나
국산 브랜드라고 해서 모두 수혜를 입는 것은 아니다. 국내 생산·연구개발·AS망을 완벽하게 갖춘 현대차그룹이 가장 유리한 위치를 점한다. 업계에서는 보조금 구조가 사실상 현대차·기아 중심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KG모빌리티는 토레스 EVX·무쏘 EV 등 일부 차종에만 혜택이 가능해 제한적 수혜에 그칠 전망이다. 르노코리아와 한국GM은 국내 생산 전기차가 없어 제도 변화의 수혜를 기대하기 어렵다. 수입차 중에서는 국내 투자와 서비스 네트워크를 꾸준히 유지해 온 BMW 등 일부 브랜드만 제한적인 혜택을 유지할 것이란 분석이다.
‘보급 확대’ vs ‘산업 보호’…정치권도 개입
정책을 둘러싼 논쟁도 격화하고 있다. 찬성 측은 보조금 재원이 국민 세금인 만큼 배터리·부품·고용 등 연관 산업 효과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주요국이 자국 중심 보조금 정책을 강화하는 글로벌 흐름도 근거로 제시된다.
반면 반대 측은 “보조금의 본질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올해 초 테슬라와 BYD의 공세로 국내외 브랜드가 일제히 가격을 내리며 경쟁이 붙었는데, 보조금 장벽으로 이 경쟁 구도가 사라지면 수요 위축과 시장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정책 질의에서 “소수 특정 기업에 보조금이 집중돼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이번 평가가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배점 관련 오류를 검토해 조치하겠다”고 답했다. 국회는 ‘평가 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국회에 보고한다’는 부대의견을 붙여 본회의를 통과시켰다.
이번 개편은 자국 산업 육성과 탄소 중립, 소비자 선택권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충돌하는 복잡한 방정식이다. 전기차 보급이 탄력을 받고 있는 결정적 시점에 정부가 어떤 균형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국내 전기차 시장의 지형도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