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방어에 동원된 외환당국의 ‘조용한 개입’이 숫자로 드러났다.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5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69억9천만 달러(약 649조원)로, 4월 말 대비 8억8천만 달러 감소했다.
지난 4월 한 달간 42억2천만 달러나 증가하며 반등세를 보였던 외환보유액이 한 달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국민연금과의 외환스와프 등 시장 안정화 조치에 주로 기인해 감소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스와프, 환율 방어의 핵심 수단으로
국민연금공단이 해외 투자를 위해 필요한 달러를 외환시장에서 직접 매수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추가로 상승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한국은행이 보유 외환을 국민연금에 스와프 형태로 공급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효과가 발생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방식을 두고 “직접 개입보다 덜 가시적이지만, 환율 급등 압력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는 비공개형 안정 장치”로 분석한다.
유가증권 줄고 예치금 늘고…’유동성 확충’ 신호
자산 구성 변화도 주목된다. 유가증권은 전월 대비 33억9천만 달러 감소한 3,806억8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즉시 사용 가능한 현금성 자산인 예치금은 25억9천만 달러 늘어난 213억5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구성 변화를 수익성보다 유동성을 우선하는 방향의 포트폴리오 조정으로 해석한다. 환율 방어 등 단기 개입에 신속히 사용할 수 있는 실탄을 확충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특별인출권(SDR)은 3천만 달러 감소한 157억8천만 달러를 기록했고, 금은 매입 당시 가격 기준으로 47억9천만 달러를 유지했다.
세계 12위 유지…”절대 규모는 양호, 추세는 점검 필요”
한국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4월 말 기준 세계 12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3조4,105억 달러로 압도적 1위이고, 일본(1조3,830억달러), 스위스(1조823억달러)가 뒤를 이었다. 한국보다 많은 국가에는 러시아·인도·대만·독일·사우디아라비아·이탈리아·프랑스·홍콩도 포함된다.
외환 전문가들은 4,000억 달러 이상의 절대 규모 자체는 신흥국 대비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기재부와 한국은행이 공개 석상에서 “외화 유동성 양호”를 강조하는 동시에 실제로는 보유액을 소모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개입 여력과 정책 투명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이 커질 수 있다고도 지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