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까지만 해도 반도체 호황을 등에 업고 상향 조정 행진을 이어가던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이 불과 두 달 만에 정반대 흐름으로 꺾였다. 예기치 못한 중동발 지정학적 충격이 방아쇠를 당긴 결과다.
네덜란드계 글로벌 금융그룹 ING는 지난 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2%에서 2.0%로 0.2%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원유·원자재 공급 차질이 제조업 활동 위축과 비용 부담 증가를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ING는 “전쟁이 단기간 내 종료되더라도 이러한 영향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글로벌 공급망 충격이 단순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구조적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낙관론의 붕괴…2월 상향, 두 달 만에 원위치
올해 초 주요 기관들은 한국 경제에 대해 이례적인 낙관론을 내놓았다. 반도체 업황 개선과 수출·내수 회복 기대감이 맞물린 결과였다. KDI는 지난 2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성장률을 1.8%에서 1.9%로 올렸고, 한국은행도 같은 달 1.8%에서 2.0%로 0.2%p 상향했다. ING 역시 기존 2.0%에서 2.2%로 전망치를 높인 바 있다.
그러나 2월 말 이란-이스라엘 전쟁이 확전되며 상황이 급변했다. OECD는 지난달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1.7%로 무려 0.4%p 대폭 낮췄다. 씨티는 2.4%에서 2.2%로, 바클리는 2.1%에서 2.0%로 잇달아 하향했다. 대외의존도가 높고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진 한국 경제가 외부 충격에 더 취약하다는 점이 공통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추경 26조, GDP 0.2%p 끌어올린다
이번 ING 보고서에는 성장률 하향 조정과 함께 정부의 재정 대응 효과도 반영됐다. ING는 정부가 지난달 31일 편성한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올해 GDP를 0.2%p 끌어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ING는 “국회에서 추경이 통과될 경우 올해 2분기 성장에 주로 기여할 것”이라며 “2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0.2%로 둔화하겠지만 역성장은 피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되고 추경 집행이 이어질 경우 향후 물가 상승 위험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 상방 압력 가능성도 열어뒀다.
반도체 수출은 버팀목…하반기 소재 재고가 ‘뇌관’
ING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은 수출이 올해 한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이 될 것으로 봤다. 지난달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8.3% 급증해 시장 예상치(44.8%)를 크게 웃돌았다. 주요 15개 수출 품목 중 10개가 증가했으며, AI와 메모리 반도체 수요와 관련해 글로벌 투자 둔화 신호도 현재까지는 감지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ING는 하반기를 잠재적 고비로 지목했다. ING는 “현재까지 반도체는 원자재 부족을 크게 겪지 않았으나, 핵심 소재 재고는 향후 몇 분기 내 소진될 것”이라며 “공급 차질이 지속될 경우 올해 하반기에는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단기 수출 호황과 중장기 공급망 위기가 동시에 전개되는 이중 구조를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 요인으로 분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