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월간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800억달러 고지를 넘어섰다. 화려한 총액 뒤에는 반도체 초호황이라는 단일 엔진과 중동 전쟁이 파고든 균열이 동시에 자리한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861억3천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종전 기록인 지난해 12월 695억달러를 크게 뛰어넘으며 700억달러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800억달러대로 직행했다. 무역수지 흑자 역시 257억4천만달러로 월간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DDR4 가격 863% 폭등…반도체, 수출 38% 독식
이번 수출 호조의 핵심 동력은 반도체다. 3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1.4% 폭증한 328억3천만달러로 단독 품목 기준 사상 첫 ‘300억달러 시대’를 열었다.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38.1%까지 확대돼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가격 급등이 물량 증가를 이중으로 밀어 올렸다. DDR4 8Gb는 1년 새 1.35달러에서 13.0달러로 863% 치솟았고, DDR5 16Gb와 낸드 128Gb도 각각 6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강감찬 산업통상부 무역투자실장은 “높은 D램 단가가 유지되는 가운데 분기 말인 3월을 맞아 조업일수와 수출 물량이 크게 늘었고, 특히 낸드 가격이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면서 전체 수출 급증을 견인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서버 투자 확대로 클라우드 데이터센터의 고부가가치 메모리 수요가 급증한 것이 가격 폭등의 근본 원인으로 분석된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AI 수요 흐름이 단기간에 꺾이지 않는 한 반도체 호황이 상반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본다.
‘반도체 쏠림’ 심화…업황 꺾이면 수출 전반 위축 우려
그러나 반도체 비중의 급격한 팽창은 구조적 취약성으로 지목된다. 2018년 반도체 슈퍼사이클 당시 비중이 20% 중후반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의 38.1%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경기 흐름 전체가 ‘반도체 사이클’에 좌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다만 반도체를 제외한 3월 수출도 전년 동월 대비 18.4% 증가했고, 이차전지(36.0%), 컴퓨터(189.2%), 선박(10.7%) 등 15대 주력 품목 중 10개가 성장세를 기록해 기초 체력은 견고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동 전쟁, 이면을 파고들다…대중동 수출 49% 급감
총액 지표와 달리 세부 지표에서는 중동 전쟁의 충격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수출 통제가 시작된 지난달 13일 이후 휘발유·경유·등유 수출은 각각 5%, 11%, 12% 감소했고, 석유화학제품 수출도 4주 차에 물량이 17% 줄었다. 나프타는 지난달 27일 수출 제한 조치로 3월 수출 물량이 22% 급감했다.
지역별로는 대중국·대미국 수출이 반도체를 중심으로 각각 64.2%, 47.1% 증가한 반면 대중동 수출은 물류 차질로 49.1% 급감하며 극명한 대비를 보였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영향으로 원유 수입액은 유가 급등에도 불구하고 전년 대비 5% 감소한 60억달러에 그쳤다.
강 실장은 “지금은 무역수지 흑자 규모보다 안정적인 원유 확보 자체가 더 절박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중동 전쟁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서 유가 상승과 공급망 불안이 심화하는 등 수출 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외 악재 속에서도 반도체(34.8%)·반도체장비(4.4%) 수입은 늘어, 미래 먹거리를 위한 설비 투자는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