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시 호르무즈 해협으로 불려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중국·일본·프랑스·영국 5개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군함 파견을 사실상 요청하면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3월 1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바라건대, 영향을 받는 국가들이 이곳으로 함정을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3월 15일 ABC·NBC 방송 인터뷰에서 이를 거듭 뒷받침했다. 라이트 장관은 “전 세계 모든 국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목록 최상단에는 중국, 일본,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요청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라이트 장관은 “일부 국가들과 이미 대화를 해왔기 때문에 참여 의사가 사실임을 알고 있다”고 밝히며 물밑 협의가 이미 진행 중임을 시사했다.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안보, 군사 안전, 한미동맹이라는 세 가지 축이 동시에 흔들리는 복잡한 국면에 처한 셈이다.
이란 군사력 무력화가 먼저…상선 호위는 그 다음
미국 행정부는 다국적군 파견 이전에 반드시 선결돼야 할 조건을 명확히 제시했다. 라이트 장관은 “지금 우리의 초점은 이란의 군사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해협을 위협하는 데 특별히 사용되는 군사 능력도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드론·기뢰·단거리 미사일 등을 동원해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을 차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도 “이란의 군사 능력을 100%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드론 1~2기, 기뢰,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여전히 쉬운 일”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해협 개방을 위한 다국적군 상선 호위 작전이 여전히 실질적 교전 위험을 내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이트 장관은 충돌이 “몇 주 안에 종료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후 에너지 공급이 회복되고 유가도 하락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란 군사력 무력화를 완료한 뒤, 다국적군과 함께 해협 개방을 단행한다는 단계적 구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청해부대 카드…한국의 선택지와 딜레마
한국의 파병 수단으로는 현재 아덴만에 파견된 청해부대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청해부대는 구축함 1척과 약 300명의 병력으로 구성되며, 현 위치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 3~4일이면 전개 가능하다. 한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20년에도 청해부대를 호르무즈 해협에 파견해 독자적 상선 호위 임무를 수행한 선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 국면은 2020년과는 결이 다르다. 당시는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의 호위였지만, 현재는 미-이란 간 무력 충돌이 진행 중인 교전 환경이다. 청해부대가 호르무즈에 재파견될 경우, 이란과의 직접 교전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군사적 부담이 크게 다르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한국의 딜레마는 깊다. 미국의 요구에 응하면 이란과의 관계 악화가 불가피하고, 거부하면 한미동맹에 균열 신호를 줄 수 있다. 한국이 원유 수입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에너지 안보 현실은 파견 결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중국도 ‘조건부 참여’…다국적 연합의 변수
미국이 구상하는 다국적 연합의 최대 변수는 중국이다. 라이트 장관은 “호르무즈 해협을 여는 것은 미국보다 중국에 더 중요하다”며 중국의 참여를 강하게 압박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중동산 원유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주미 중국 대사관은 “중동에서 모든 당사국이 적대 행위를 중단하는 것이 먼저”라며 조건부 참여 입장을 제시했다. 라이트 장관은 “중국과 긴장은 존재하지만 생산적인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며 중국이 “건설적 파트너가 되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지정학적 경쟁국끼리 같은 작전 공간에서 협력해야 하는 이례적 구도가 형성되는 셈이다.
결국 이번 호르무즈 다국적 연합 구상은 에너지 안보라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축으로 미국·한국·일본·프랑스·영국에 중국까지 아우르는 전례 없는 협력 프레임이다. 한국 정부가 청해부대 재파견이라는 결단을 내릴 경우, 교전 위험 속에서도 에너지 안보와 한미동맹을 동시에 지키는 선택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반면 거부 또는 유보 결정은 동맹 관리 비용을 높이는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미국의 이란 군사력 무력화 작전이 마무리되는 ‘몇 주 안’이, 한국의 전략적 선택을 강요하는 결정적 시간표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