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창업 시장이 5년째 얼어붙은 가운데, 인공지능(AI)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만 자본을 독식하는 극단적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발표한 ‘연간 창업기업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창업기업은 113만5천561개로 전년보다 4.0% 감소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감소세는 이제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통계 이면에는 뚜렷한 명암이 존재한다. 기술 기반 창업은 22만1천63개로 오히려 2.9% 증가하며 전체 창업의 19.5%를 차지, 통계 작성 이래 최고 비중을 기록했다. 금융·보험업(25.9%), 정보통신업(17.5%) 등 AI 기술을 활용하는 업종은 폭발적으로 성장한 반면, 숙박·음식점업(-11.8%), 부동산업(-9.1%) 등 전통 산업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자본은 AI로, 전통산업은 ‘생존 창업’ 늪에
자본 시장에서 이 같은 양극화는 더욱 극명하다. 지난해 벤처 투자는 13.6조원(약 93억 달러) 규모로 역대 최다 딜 건수인 8,542건이 체결됐다.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만 1.4조원이 집중 투입됐는데, 이는 글로벌 금리 인하와 맞물린 AI 투자 붐의 직접적 결과다.
투자 자금은 소수 분야로 몰렸다. 바이오·헬스, ICT, 제조 등 상위 3개 업종이 전체 투자의 52.8%를 차지했으며, 특히 게이밍 부문은 69.4% 성장률을 기록했다. 반면 숙박·음식점업 창업 감소는 외식 경기 침체와 카페 시장 포화가 겹친 결과다. 업계 관계자들은 “팬데믹 이후 회복되지 못한 소비 심리와 임대료 상승으로 신규 진입 장벽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부동산업 역시 2023~2024년 금리 인상 사이클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 투자 수익률 악화와 건설 경기 부진이 맞물리며 창업 의욕이 꺾인 상태다. 60세 이상 연령대에서만 창업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는데, 이는 은퇴 후 생계형 창업 수요가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정부, “양적 확대” 접고 “유니콘 50개 집중 육성”
정부는 이 같은 구조적 변화에 대응해 정책 방향을 전환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유니콘 브릿지 프로젝트’는 광범위한 초기 자금 살포 방식을 폐기하고, 선별된 50개 스타트업에 집중 투자하는 구조다.
구체적으로 1년차에는 각 기업당 6억원 정부 자금과 최대 100억원 대출 보증을 제공한다. 2년차에는 성과 상위 20개 기업에만 10억원을 추가 지원하며, 역시 최대 100억원 보증이 뒤따른다. 한 성숙기 부장관은 “유니콘은 기술 혁신과 일자리 창출을 통한 국가 성장의 새로운 엔진”이라며 “단순 자본 확충이 아닌 실행 능력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 10년간 지원 정책을 통해 연간 62만개 수준의 창업 기반을 조성했으나 글로벌 카테고리 리더로 성장한 기업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반성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2025년 기준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27개에 불과하며, 평균 7년 8개월 만에 유니콘 지위에 도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4개 신규 유니콘은 모두 AI 반도체, 데이터, 핀테크, 클라우드 등 기술 기반 산업에 집중됐다.
“생존 창업 시대 끝, 기술 경쟁력만 살아남는다”
전문가들은 이번 통계가 한국 창업 생태계의 질적 전환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고 해석한다. 세무사들은 “과거 세제 혜택만 보고 뛰어들던 자영업 시대는 끝났다”며 “이제는 기술 차별성과 자본 효율성 없이는 시작조차 어렵다”고 조언했다.
시기별 창업 동향도 이를 뒷받침한다. 설 명절 영향으로 1월 창업이 급감하며 상반기는 7.8% 줄었지만, 수출 강세와 내수 활성화 조치로 하반기는 0.2% 증가 반전에 성공했다. 이는 정책 변화가 실물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국제 경쟁 환경도 변수다.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스타트업과의 경쟁 심화로 한국은 AI 반도체, 고급 장비, 산업용 기술 등 차별화 영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본 풍부성만으로는 유니콘을 만들 수 없다”며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실행력이 새로운 기준이 됐다”고 전했다. 창업 시장의 냉혹한 구조조정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