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일 아침 지하철 승강장을 가득 메우는 출퇴근 인파. 그 혼잡의 해법으로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노인 무임승차 시간 제한’이다. 시니어 세대에게는 익숙한 일상 권리가 흔들릴 수 있다는 신호탄이 울렸다.
대통령 지시로 불붙은 피크타임 무임 제한론
이재명 대통령은 2일, 출퇴근 시간대 대중교통 혼잡 완화 대책 마련을 국토교통부에 지시했다. 여기에는 노인 무임승차 제한 연구도 명시적으로 포함됐다.
지난 3월 24일 국무회의에서도 “출퇴근 피크 시간대를 중심으로 무료 이용을 한두 시간 조정하자”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고유가로 대중교통 이용이 급증하면서 혼잡이 심화된 상황이 정책 발동의 직접적 배경이다.
제도는 유연하지만, 책임은 ‘안갯속’
현행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노인복지법 제26조에 근거하며, 만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 법 조항이 “할 수 있다”는 임의 조항으로 설계돼 있어, 의지만 있으면 법 개정 없이도 시간대별 요금 조정이 가능하다는 것이 전문가 해석이다.
문제는 부처 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국토부는 “복지부 소관”이라 하고, 복지부는 “에너지 대책 논의에서 나온 만큼 기후부가 주무 부처”라며 협조 부처 위치를 자처했다. 행정안전부는 “검토하는 바 없다”는 입장이다. 주도적으로 나서는 부처가 없는 이 구조 속에서 “사실상 달라지는 것이 없게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 “데이터 먼저, 정책은 그다음”
전문가들은 정책 방향 자체에는 공감하면서도 선행 조건을 강조한다. 유정훈 아주대 교수는 “노인 이용 비중과 혼잡 기여도를 정밀하게 분석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데이터 없이 추진하면 정책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경고다.
고준호 한양대 교수는 “출퇴근 시간대 이용객 연령대 분석이 선행돼야 하며, 장기적으로는 출퇴근 시간 분산이나 근무 형태 변화 같은 구조적 대책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한노인회 역시 이미 혼잡 시간대 자율 자제를 권고해 왔으며, 노인 연령 기준 상향 문제도 정부와 논의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는 “이번 구상은 복지 축소가 아닌 혼잡 완화를 위한 교통 정책”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수십 년간 당연한 권리로 자리 잡은 제도를 건드리는 만큼, 데이터 기반의 면밀한 설계와 사회적 합의 없이는 세대 간 갈등의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