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2월 8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465석 중 316석을 획득하며 개헌 발의선(310석)을 단독 돌파했다. 태평양전쟁 종전 이후 단일 정당이 이 선을 넘은 것은 처음이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36석)까지 합치면 여당 의석은 352석에 달한다. 압도적 승리는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에게 ‘자유로운 칼’을 쥐여준 셈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번 승리가 단순한 국내 정치 변화를 넘어 동북아 안보 구도 전체를 흔들 가능성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해 11월 “대만 유사시 일본의 존립위기사태”라고 발언하며 중국과 전면 충돌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로 맞받아쳤다. 일본이 마땅한 대응 카드가 없던 수세 국면에서 이번 선거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미국은 즉각 환영 메시지를 보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다카이치 총리의 ‘힘을 통한 평화’ 추진을 지지한다”며 강력한 지지 의사를 밝혔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일본이 강해지면 미국도 아시아에서 강해진다”고 말했다. 한국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미일 동맹의 전략적 재편이 가시화되는 순간이다.
미일 동맹 2.0, 대중 압박 수위 높인다
이번 선거 결과는 미일 동맹의 작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12월 새 국방전략(NDS)을 통해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기능 강화를 명시했다. 여기에 개헌 가능 의석까지 확보한 일본이 합류하면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대중 압박 강도는 한층 세질 수밖에 없다.
아시아그룹의 데이비드 볼링 대표는 “중국은 다카이치 총리가 확고한 입지를 다졌고, 자신들의 고립 시도가 완전히 실패했다는 현실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이례적으로 침묵했다. 중국의 경제 보복 카드가 오히려 일본 국민의 결집을 불러온 역설적 결과다.
문제는 한국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지율 78.1%라는 압도적 민심을 등에 업고 중일 갈등의 구도 변경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선택’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미일 양국이 요구하는 대중 견제 공조에 한국이 어느 수위까지 동참할 것인지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균형외교의 딜레마, 동맹과 실리 사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베이징(5~7일)과 나라현(13~14일)을 연이어 방문하며 균형외교 행보를 이어왔다. 베이징에서는 한중 공동의 역사를 강조하면서도 “중국만큼 일본도 중요하다”고 언급했고, 일본에서는 한중일 3국 소통 틀 유지를 강조했다. 전형적인 등거리 외교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다카이치 총리가 강력한 지지 기반과 미국의 공개적 지원까지 확보한 상황에서 한국에 중국과 거리를 두라는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미일관계 강화 국면에서 한국이 배제되거나 부담을 느낄 상황이 충분히 만들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반면 최은미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이 기대하는 것은 한국이 중국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 않는 정도”라며 “중일 갈등 관련 한국에 더 많은 역할을 요구하거나 압박하는 모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상대적으로 낙관적 전망을 내놨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3월 미일 회담, 한반도 안보 재편의 분수령
이 모든 의문은 3월 19~20일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가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국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한국 안보전략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기능 강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가시화될지, 일본의 방위력 강화와 어떻게 연계될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중국 사회과학원 일본학연구소의 팡중펑 연구원은 “일본이 선거 우위를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면 아시아태평양 지역 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일 갈등이 격화할수록 한국이 느끼는 전략적 압박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316석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의석수가 아니다.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손에 쥔 ‘개헌 가능’ 열쇠이자, 동북아 안보 판을 뒤흔들 뇌관이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강해진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안보 부담은 급증할 수 있다. 3월 정상회담 이후 한국 정부가 어떤 전략 카드를 꺼내들지,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시선이 청와대로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