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환율 민감도 미국의 ‘9배’… 외환시장 약한 고리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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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원 환율 상승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 / 뉴스1

경상수지 흑자가 사상 최대 수준으로 불어나고 있는데도 달러·원 환율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다. 수출이 잘 될수록 원화 가치가 오른다는 경제학 교과서 공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은행 국제금융연구팀의 김지현·김민 과장은 17일 ‘BOK 이슈노트: 우리나라 대외부문의 구조적 변화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2000년 이후 달러·원 실질환율이 19% 상승한 가운데, 그 원인의 80% 이상이 수출 호조가 아닌 해외투자 급증과 고령화에 따른 저축 증가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2015년을 기점으로 뒤집힌 공식

과거에는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면 원화 절상이 뒤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을 전후로 이 관계가 역전됐고, 2023년 2분기 이후에는 흑자 폭 확대와 원화 절하가 동시에 진행되는 패턴이 굳어지고 있다.

한은은 이 현상을 경상수지 변화를 이끄는 충격의 성격 변화로 설명한다. 수출 경쟁력 향상이 원인인 ‘상품충격’은 원화 절상을 유발하지만, 민간의 해외자산 선호 확대가 원인인 ‘금융충격’은 자본 유출을 수반해 경상수지 흑자와 원화 절하를 동시에 만들어낸다. 분석 결과 자본유출형 충격의 발생 빈도는 2015년 이전 21.4%에서 이후 34.9%로 커진 반면, 자본유입형 충격은 35.7%에서 18.6%로 줄었다.

‘서학개미’발 달러 수요, 구조적 자본 유출로

달러·원 환율 상승
뉴스1

보고서가 지목한 핵심 구조 변화는 세 가지다. 첫째, 한국은 2014년 3분기에 순대외채무국에서 순대외자산국으로 전환됐으며 지난해 말 기준 순대외자산은 9042억 달러에 달한다. 둘째, 해외자산 축적의 주체가 공공 부문에서 민간으로 이동해 2025년 기준 전체 대외자산 중 증권투자 비중이 44.1%에 이른다. 셋째, 그 투자처가 미국에 극도로 쏠려 있다.

전체 대외 증권투자 중 63.4%, 주식투자 중 67.7%가 미국에 집중돼 있는데, 이는 선진국 평균(전체 25.3%, 주식 29.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특히 2020년 이후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직접투자가 급증하면서 달러자산 수요를 빠르게 확대시켰다.

고령화로 인한 가계 순저축률 상승(2000~2010년 2.4% → 2011~2025년 6.1%)도 해외자산 선호 심화로 이어지는 구조적 요인으로 꼽혔다.

환율 민감도, 미국의 9배…”WGBI 편입으로 자본유입 기반 닦아야”

한은 분석에서는 한국의 환율 민감도가 주요 선진국보다 현저히 높다는 점도 확인됐다. 자본유출 상황에서 경상수지가 GDP 대비 1%포인트 늘어날 때 달러·원 실질환율은 0.65%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조건에서 일본은 0.38%포인트, 미국은 0.07%포인트에 그쳐 한국이 미국의 약 9배에 달하는 민감도를 보인다. 외환시장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 동일한 자본유출 충격에도 원화가 더 크게 흔들리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김지현 과장은 “단순히 수출이 잘 된다고 원화 가치가 올라갈 것이라는 1대1 매치가 어려워지는 상황이 됐다”며 “경상수지가 좋아졌을 때 어떤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봐야 환율에 대한 함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단기적으로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 완화를 위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세계국채지수(WGBI)와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통해 자본유입 기반을 확충하고 투자자를 다변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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