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반격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9일 4분기 실적발표에서 삼성은 업계 최상위 속도인 11.7Gbps급 HBM4 제품의 주요 고객 품질인증을 완료하고, 다음 달부터 본격 출하에 나선다고 밝혔다. 주요 고객사는 엔비디아로 추정된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삼성의 올해 HBM 비트 출하량 성장률을 전년 대비 128% 이상으로 전망했다. 삼성 측도 올해 HBM 매출이 지난해보다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가 주도권을 쥐고 있던 시장 판도에 변화가 감지되는 대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HBM4 개발 초기부터 고객 요구치를 웃도는 성능을 확보해 경쟁사들과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분석한다.
설계 여유가 가른 퀄테스트 명암
HBM4 개발 과정에서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사들은 당초 제시한 성능 기준을 중간에 상향 조정했다. 대역폭과 전력효율, 장기 신뢰성 요구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부 경쟁사들은 설계 변경과 재설계가 불가피했고, 이는 공급 일정 지연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11Gbps대 대역폭을 확보했다. 성능에 충분한 여유를 둔 덕분에 요구 조건이 높아진 후에도 재설계 없이 검증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김재준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개발 착수 당시부터 JEDEC 표준을 넘어서는 목표를 설정했다”며 “설계 변경 없이 샘플을 제공했다”고 설명했다.
HBM4 세대에서는 적층 수가 늘고 인터페이스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발열과 전력, 신뢰성 관리 난도가 크게 높아졌다. 반도체 업계는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설계역량이 퀄테스트의 핵심 기준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매출 3배·점유율 30%… 달라진 시장 지형도
삼성의 HBM4 본격 공급은 시장 점유율 지형도를 바꿀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의 올해 HBM 시장 점유율이 약 30%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2026년 전량 구매발주(PO)를 확보한 상태이며, 현재 공급 규모를 넘어서는 고객 수요가 지속되고 있다.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가 HBM4 품질 인증 과정에서 긍정적인 서프라이즈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며 “시장 기대를 상회하는 공급점유율을 확보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다른 메모리 업체들의 HBM 매출 비중 증가율이 둔화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대비되는 흐름이다.
삼성 측은 고객사들이 2027년 이후 물량도 조기 공급 확정을 희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삼성 제품의 품질과 공급 신뢰성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높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토탈솔루션’ 경쟁력이 만든 전환점
업계는 삼성의 종합반도체회사(IDM) 경쟁력이 HBM4 시대에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설계부터 양산까지 원스톱으로 제공 가능한 ‘토탈솔루션’ 역량이 고객 요구 변화에 실시간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는 설명이다.
삼성은 HBM4/HBM4E용 10나노급 6세대 공정에도 병행 투자하며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 필수 소재인 헬륨을 재사용하는 시스템을 업계 최초로 개발해 일부 생산 라인에 적용하는 등 환경 기술도 강화 중이다.
다만 매우 낮은 재고 수준을 고려할 때 1분기 DRAM 비트 출하 성장은 전분기 대비 한 자릿수 초반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관계자들은 2분기 이후 본격적인 공급 확대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