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공원도 노인정도 아니었다”…갈곳없는 노인들 ‘이곳’으로, 이유 봤더니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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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피해 공항 찾는 노인들
갈 곳 없는 현실이 낳은 풍경
초고령사회 앞둔 복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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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뉴스1

“심심해서 사람 구경하러 온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있으니 신기하면서도 재밌다.” 인천국제공항 터미널에서 만난 80대 노인의 담담한 말이다.

여행 가방 하나 없이 공항을 찾는 이들의 진짜 이유를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에어컨 비용 때문도 아니고,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갈 곳이 없어서’다.

한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인천공항을 찾는 노인들이 다시 늘고 있다. 수도권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반면 공항 내부는 24~26도로 쾌적하게 유지된다.

코로나19로 잠시 주춤했던 이른바 ‘공캉스’를 즐기려는 65세 이상 노인들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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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연합뉴스

공항이 된 노인들의 피서지

인천공항 관계자는 노인들의 공항 방문 현황에 대해 “팬데믹 이전과 이후 상황이 똑같다. 여전히 많이 방문한다”며 “터미널 1층부터 3층까지 운동 삼아 오르내리는 어르신도 자주 계신다”고 전했다.

이어 “한 곳에 앉아 있다가 여행객들이 붐비면 한적한 곳을 찾아 이동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노인들이 주로 머무는 곳은 출국장이나 입국장 같은 승객 밀집 지역이 아니다. 전망대나 공항버스와 정부합동청사를 연결하는 교통센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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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연합뉴스

푹신한 소파, TV, 다양한 식당까지 갖춘 이곳은 노인들이 하루를 보내기에 안성맞춤이다.

65세 이상은 무임승차가 가능해 서울과 인천 등 수도권에서 공항철도를 이용하는 것도 부담이 없다.

한 노인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오전에 회사나 학교로 가면 혼자 남는 시간이 많다”며 “예전에는 이웃 노인들과 서로 얘기도 나눴는데 요즘에는 그러기 힘들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노인복지시설, 여전한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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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지난해 7월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돌파하면서 초고령사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복지시설 구축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 노인복지시설 현황’을 보면 노인복지관, 경로당, 양로시설, 노인복지주택, 노인요양시설, 재가노인복지시설 등이 2022년 8만 9698곳에서 지난해 9만 3056곳으로 3358곳 늘었다. 3.7% 증가한 수치다.

특히 단기보호, 방문간호, 방문요양서비스 등 재가노인복지시설은 4821곳에서 1만 5896곳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하지만 급격히 늘어나는 노인 인구를 모두 수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인 반열에 오른 만큼 향후 10~15년 후면 7~80대가 된 이들이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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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연합뉴스

노인들의 복지시설 기피 현상도 문제로 지적된다. 70대 한 노인은 “경로당은 안 간다. 텃세도 있고 답답하다. 재미도 없다”며 “시골 마을처럼 한 동네 살면 괜찮겠지만 모르는 노인들이 한곳에 모이면 맨날 싸우기만 한다”고 토로했다.

실효적 정책 마련이 과제

이에 정부는 지난해 지자체, 각 기관들과 협력해 고령화사회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사업자의 진입을 통해 시니어 레지던스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노인들이 여전히 공항과 같은 공공장소를 찾고 있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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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찾는 노인들 / 출처: 연합뉴스

공항을 찾는 노인들의 모습에 대해서는 국가 관문공항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노인 쉼터 역할을 한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이다.

점차 편중되는 연령층 추이를 신속히 살피고 실효적인 정책들이 마련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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