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47억 달러 준다는데”… K칩스법 발목 잡힌 국내기업들

국회 문턱에서 멈춘 지원책…
반도체 산업의 승부수는?

“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없습니다.”

정부 관계자가 던진 이 말은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산업의 중추인 반도체 기업 지원 법안, 이른바 ‘K칩스법’이 다시 추진될 예정이지만 정치적 난맥 속에서 전망은 불투명하다.

전 세계가 반도체 기술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지원책 마련이 지체될 경우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K칩스법을 중심으로 세제 혜택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국회 내 갈등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K칩스법은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대기업 20%, 중소기업 30%로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현재 공제율보다 5%포인트 높인 수치로, 경쟁국들의 파격적인 지원에 맞서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평가된다.

미국, 중국, EU 등은 이미 대규모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제공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제 혜택과 투자 불확실성 해소가 관건

미국은 칩스법을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각각 47억 4500만 달러와 9억 5800만 달러의 보조금을 확정했다.

이러한 지원은 단순히 기업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전략 산업으로서 반도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지원책인 K칩스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고, 관련 조세 혜택도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화여대 석병훈 교수는 “K칩스법 통과가 지연되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 역시 “우리는 이미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에 직면했다”며 “지원이 지연되면 투자를 주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K칩스법을 통해 대기업의 연구개발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 공제율을 기존 1%에서 최대 20%로 확대하고, 중소기업의 투자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이러한 혜택은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또한,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 기업이 차지하는 위상과 관련해 정부와 민간의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명대 이종환 교수는 “정책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기업들이 장기적인 투자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