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에 없어서는 안 될 원료의 97.5%를 이스라엘 한 곳에서 들여오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전쟁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흔들면서, 한국 주력 산업의 공급망에 경고등이 켜졌다.
한국무역협회는 13일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보다 석유화학 원료 및 산업 소재의 공급 차질이 먼저 확산되며, 중간재 공급망 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협회는 중동 의존도·대체 가능성·국내 산업 영향도·공정 중단 위험도를 기준으로 8대 핵심 영향 품목을 도출했다.
카타르 헬륨 산단 멈추고, 브롬은 97.5% 이스라엘産
헬륨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의 냉각재로 쓰이는 필수 소재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헬륨의 64.7%는 카타르산이었으며,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공급의 30% 이상을 담당한다.
문제는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카타르의 최대 헬륨 산단이 가동을 멈췄다는 점이다. 헬륨은 영하 269℃의 극저온 운송 인프라가 필요해 운송 중 증발 위험이 크고, 전 세계 생산국이 미국·러시아 등 극소수에 불과해 수입선 다변화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브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난연제·의약품·반도체 식각 공정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브롬의 국내 수입에서 이스라엘산 비중은 97.5%에 달한다. 반도체 공정에 직접 투입되는 브롬화수소 수입은 일본(46%)·미국(25%)·이스라엘(13%) 순이나, 주 수입처인 일본 역시 이스라엘산 브롬을 중간재로 가공하는 구조여서 공급망 고리가 취약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 다변화론 한계…실물 확보형 전환이 시급”
산업통상부는 “현재 브롬화수소는 차질 없이 수입되고 있으며 국내 비축 재고도 약 3개월분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생산에는 현재 차질이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단기 재고 여유만으로는 안심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삼성전자 등 일부 기업이 헬륨 재사용 시스템을 도입해 단기 대응에 나섰지만,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수급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암모니아의 경우 인도네시아(43.6%)가 최대 수입처이나 사우디아라비아(38.6%) 의존도도 높아 중동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만 남해화학·롯데정밀화학 등 국내 생산 기반이 일부 존재해, 즉각적인 공정 중단보다는 안정적인 수급 관리가 더 중요한 품목으로 분류됐다.
“계약보다 물량 확보…자립형 공정으로 체질 개선해야”
무역협회 진실 선임연구위원은 “이번 중동발 충격은 산지 집중과 해상 병목이 결합한 구조적 공급 충격으로 단순 다변화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불가항력적 상황에서는 계약보다 물량 확보가 더 중요한 만큼, 장기계약 중심에서 실물 확보형 조달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진 선임연구위원은 아울러 “핵심 공정은 회수·재사용 등 자립형 공정으로 전환하고, 에너지 자립 관련 기술을 국가 안보 필수 기술로 지정해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급망 구조를 재점검하고 대응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