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촉발된 국제유가 급등이 국내 소비자의 연료비 부담을 33개월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류세 인하를 동시에 가동하고 있지만, 주유소 현장 가격은 여전히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의 소비자물가지수 지출목적별 분류에 따르면, 지난 4월 개인운송장비 연료 및 윤활유 지수는 150.13(2020=100)으로 전월(138.87) 대비 8.1% 상승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했던 2022년 7월(156.7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33개월 만의 최고치다.
전체 물가 상승분의 3분의 1을 연료비가 채웠다
연료비 지수의 급등은 소비자물가 전반에 광범위한 파급력을 행사한다. 개인운송장비 연료 및 윤활유 항목의 물가 가중치는 43.2로, 전체 458개 품목 가운데 6위에 해당하는 최상위권이다.
가중치 순위는 주택임차료(89.5), 음식서비스(81.3), 개인운송장비 운영(60.3), 승용차(58.7), 통신(46.6) 순이며, 연료 항목은 이들 하위에 포함되는 세부 항목임에도 자체 가중치만 43.2에 달한다. 지난 4월 석유류 가격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21.9% 상승했고, 석유류의 물가 기여도는 0.84%포인트(p)로 전체 물가 상승분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5월 8일 기준 전국 보통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리터(L)당 2,011.71원으로 1년 전(1,638.94원)보다 22.7% 올랐다. 자동차용 경유 평균 판매가격도 같은 기간 1,505.77원에서 2,006.22원으로 33.2% 상승했다.
정부 개입 없었다면 물가 1.2%p 더 높았다
정부는 지난 3월 13일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하고, 같은 달 27일부터 유류세 인하 조치를 병행했다. 5월 8일 0시부터 적용된 5차 최고가격제에서는 휘발유 도매가격을 L당 1,934원, 경유는 1,923원, 등유는 1,530원으로 동결했다.
당국은 두 가지 조치가 없었다면 4월 기준 휘발유는 L당 2,200원, 경유는 2,800원까지 올랐을 것으로 추산했다. 실제 소비자물가 상승률(2.6%)도 약 1.2%p 더 높아 3%대 중후반 수준에 육박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3월 기준 석유 최고가격제가 물가 상승률을 최대 0.8%p, 4월 유류세 인하폭 확대가 0.2%p를 각각 낮춘 것으로 추정했다. KDI 마창석 연구위원은 “석유 최고가격제, 유류세 인하 등 정책 대응은 국제유가 상승의 소비자물가 파급을 축소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정유사 부담 임계점… 6차 고시가 변곡점
그러나 중동전쟁 장기화에 따라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정유사의 수익성 압박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KDI는 2분기부터 4분기까지 국제유가가 4월 평균인 배럴당 105달러를 유지하는 고유가 시나리오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여도가 최대 1.6%p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에너지 운송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가 10%p 오를 때 국내 석유류 가격이 2.69%p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경기 회복이나 OPEC 감산 등 통상적인 유가 변동 요인에 따른 상승폭(2.00%p)을 약 30% 웃도는 수치다.
고려대 경제학과 강성진 교수는 “정유사 부담이 계속해서 커지면 공급을 줄여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고유가 국면이 장기화됨에 따라 정유사 부담에서 정부 부담으로 이동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6차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정유사 공급 도매가격을 오는 22일 고시할 예정으로, 시장에서는 이번 고시가 가격 정책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주목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