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선업계가 최근 한 달여간 5조4000억원이 넘는 수주를 기록하며 화려한 출발을 알렸다. 하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이같은 호조가 오히려 중국 조선사들에게 고부가가치 선박 시장 진입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HD한국조선해양은 1월 LNG운반선 4척을 수주했고, 한화오션은 지난 12월 LNG운반선 7척을 수주한 데 이어 1월 초대형 원유운반선 3척을 추가로 확보했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12월 LNG운반선 2척을 수주했다. 여기에 대한조선이 4척을 추가하며 국내 조선사들의 최근 한 달여간 수주액은 약 5조4000억원에 달했다. 특히 LNG운반선 8척, 원유운반선 12척 등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수주가 이뤄지면서 수익성 개선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는 2026년 조선사 합산 신규 수주가 약 388억달러로 전년 대비 10%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LNG 수출 프로젝트 최종투자결정(FID)이 속속 확정되고, 글로벌 선대의 노후화가 가속화되면서 발주 물량이 본격적으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설비 100% 가동… “2028년까지 물량 확보”
문제는 넘치는 수주를 소화할 생산설비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조선 빅3의 수주 잔고는 2025년 3분기 기준 135조원으로, 2028년까지 건조할 물량을 이미 확보한 상태다. 설비 대부분이 기존 계약 물량 처리에 배정되면서 추가 수주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호황기 진입 이후 대부분의 설비가 포화 상태에 근접했다”며 “조선소 입장에서는 현 생산설비에서 수익을 많이 남길 수 있는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으로 선별적 수주를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韓이 못 받으면 中이 받는다… 기술 격차 축소 우려
설비 포화로 인해 한국 조선사들이 받지 못한 발주 물량은 자연스럽게 중국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선박 노후화로 인한 교체 시점을 한국 조선업계의 설비 스케줄에 맞춰 미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선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중국 조선사들이 이런 기회를 발판 삼아 건조 실적을 쌓고 기술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시장에서 그랬듯, 중국이 건조 경험을 축적한 뒤 가격 경쟁력까지 내세우면 한국의 경쟁 우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아직 고부가가치 선박에서는 우리나라 기술력을 따라잡지 못하지만, 중국 기업들이 건조 실적을 쌓으면서 벌크선·컨테이너선처럼 가격 경쟁력을 내세운다면 장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암모니아·액화수소 운반선이 차기 전쟁터
조선업계는 차세대 호황기를 대비해 암모니아 운반선, 액화수소 운반선 등 차세대 선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30년께 본격화될 선박 발주 물량에서 이들 선박이 고부가가치의 중심이 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현재 암모니아 운반선 부문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시장 최고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액화수소 운반선에서는 조선업 재건을 노리는 일본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어 새로운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중립에 대한 목소리가 최근 잦아들긴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친환경 선박이 주류가 될 것”이라며 “조선업계가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차세대 고부가가치 선박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