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이 수출을 막지 못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고 글로벌 물류가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국의 3월 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800억 달러 벽을 돌파했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그 중심에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3월 수출입 동향을 발표하며, 3월 수출액이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한 861억3천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 역대 최고였던 작년 12월 695억 달러를 100억 달러 이상 뛰어넘는 수치다.
월간 수출은 지난해 6월 전년 동월 대비 증가세로 전환한 이후 10개월 연속 역대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며 한국 경제의 외화 버팀목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한 달 만에 스스로 세운 기록 갈아치워
이번 수출 신기록의 핵심 동력은 단연 반도체다. 3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151.4% 급증한 328억3천만 달러로 집계됐다. 반도체 월간 수출이 300억 달러를 넘긴 것은 사상 최초다.
불과 한 달 전인 2월 세운 251억 달러의 역대 최고 기록을 단숨에 77억 달러나 끌어올린 것이다. 메모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가운데 AI 서버 투자 수요와 일반 서버 투자 수요가 동시에 증가한 결과로 분석된다.
컴퓨터(34억2천만 달러·189.2%↑)와 무선통신기기(17억9천만 달러·43.5%↑) 수출도 급증하며 반도체 호황의 온기가 전방 산업으로 확산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차전지(8억7천만 달러·36.0%↑)와 바이오헬스(15억 달러·6.3%↑) 수출도 증가했다. 15대 품목 외 유망 품목인 전기기기(15억2천만 달러), 화장품(11억9천만 달러), 농수산식품(11억8천만 달러)은 3월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전쟁 효과’ 양면의 칼날…석유제품은 단가, 중동 수출은 급감
중동 전쟁은 품목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았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제품 수출액은 54.9% 증가한 51억 달러를 기록했다. 수출 물량 자체는 줄었지만, 단가 상승이 금액 기준 실적을 끌어올린 구조다.
반면 대(對)중동 수출은 물류 차질 직격탄을 맞아 49.1% 감소한 9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석유제품 수출 통제 조치 이후 휘발유(-5%)·경유(-11%)·등유(-12%) 등의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으며, 3월 4주 이후 석유화학 주간 수출 물량은 20% 안팎 줄어드는 흐름이 나타났다.
자동차는 일부 물류 차질에도 전기차(32%↑)·하이브리드차(38%↑) 등 친환경차 수출 증가에 힘입어 2.2% 늘어난 63억7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철강(-2.2%), 일반기계(-6.3%), 가전(-7.7%) 등 5개 품목은 감소세를 면치 못했다.
무역흑자 257억 달러…불확실성은 여전히 변수
지역별로는 대(對)중국 수출이 65% 증가한 165억 달러로 5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고, 대미 수출도 반도체·컴퓨터 급증에 힘입어 47.1% 늘어난 163억4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아세안(137억5천만 달러·34.3%↑)과 EU(74억7천만 달러·19.3%↑) 수출 역시 반도체 호조가 전체 실적을 이끌었다.
3월 무역수지는 257억4천만 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14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갔다. 수입은 에너지 부문이 7.0% 줄었지만 반도체 장비(28억8천만 달러·4.4%↑) 등 비에너지 부문이 17.9% 늘어 총 604억 달러를 기록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중동 전쟁 장기화로 수출 여건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범정부 대응체계를 가동해 안정화 조치를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들은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맞물려 당분간 수출 실적을 견인하겠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공급망 리스크와 보호무역 확산이 하방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