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인 줄 알았지?”… 자존심 구겼던 韓 업계, 드디어 환호성 터진 이유

전기차 이후 차세대 먹거리 시장
중국 독주 속 한국의 역습
북미 현지 생산이 게임 체인저

전기차 시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던 국내 배터리 업계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다.

바로 에너지저장장치, 일명 ESS 시장이다. 한때 중국 기업들에게 시장을 내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이제 북미를 무대로 반격의 서막을 올리고 있다.

37% 장악한 중국, 6%로 추락한 한국

글로벌 ESS 시장의 판도는 충격적이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19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중국 CATL이 37%의 점유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EVE 13%, BYD 9%, CALB 7%, 고션 6% 등 중국 기업들이 줄지어 따르고 있다.

한국 배터리 3사의 합산 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불과하다. 2020년만 해도 55%를 차지하며 시장을 주도했던 한국 기업들이 불과 4년 만에 6%대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전기차에 이어 ESS마저 중국에 내줬다는 비관론이 나올 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고 있다. 업계는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기회를 포착했다. 시장조사기관 BNEF는 미국 ESS 시장이 2023년 51GWh에서 2030년 485GWh로, 2035년에는 976GWh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 관세가 만든 기회의 창

한국 배터리 업계가 반격의 칼을 뺀 배경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산 배터리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여기에 우려국 소속 금지외국기관 원산지 규제까지 더해지며 한국산 배터리의 대체 수요가 급증하는 양상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지난 5월 북미 홀랜드 공장의 전기차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며 현지 양산 체제를 갖췄다. 삼성SDI도 스텔란티스 합작공장을 활용해 이달부터 미국 현지 생산에 돌입했다. SK온은 내년 하반기 조지아 공장에서 ESS 생산을 시작할 계획이다.

iM증권 정원석 연구원은 현지 생산 체제 구축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미국 시장 내 원산지 규제로 인해 국내 배터리 셀의 대체 수요가 급증했다고 분석했다. 또한 2026년부터 본격화될 중국산 ESS 규제 강화가 국내 배터리 셀 업체들에게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시장도 다시 뛴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 시장에서도 청신호가 켜졌다. 정부가 올해부터 매년 장주기 ESS 입찰을 실시하기로 하면서다.

한국 ESS 시장은 2018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신규 용량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급성장했다. 하지만 낮은 사업성과 안전 문제로 2019년 이후 정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정부는 2038년까지 23기가와트 공급을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 5월 진행된 1차 입찰에서는 목표 물량 540메가와트를 초과한 563메가와트 규모가 선정됐다. 삼성SDI가 6개 프로젝트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며 전체 물량의 76%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중 진행될 2차 입찰 규모는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량은 1차와 비슷한 540메가와트이며, 공급 시기는 2027년 12월로 정해졌다.

전기차보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

ESS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업계 관계자는 ESS가 전기차에 비해 산업 트렌드가 안정적이고 계약 규모가 커서 수익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한 ESS는 기업 간 거래 위주로 장기 계약 없이 1년 단위 납품이 많아 수요 변동성이 적다. 생산 계획 예측도 비교적 수월해 안정적인 라인 가동률과 수익 확보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한국 배터리 업계가 보유한 기술력도 강점이다. 전기차 배터리로 검증받은 품질과 안전성을 바탕으로 ESS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중국 기업들의 독주로 얼어붙었던 ESS 시장에서 한국 배터리 업계가 현지 생산과 품질 경쟁력, 정책 지원이라는 삼박자를 갖추고 반격을 시작했다.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 ESS가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