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또다시 지도 요구
미국은 압박, 한국은 고심 중
국가 자산 둘러싼 공방 재점화

한미 간 민감한 데이터 공방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이 구글을 앞세워 한국 정부에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세 번째로 요구하면서, 안보와 영토 주권, 산업 보호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고정밀 지도’다. 일반 지도보다 훨씬 높은 해상도를 갖춘 이 지도는 도로의 차선, 경사, 횡단보도, 신호등 위치 등까지 정교하게 구현돼 있어 자율주행, 드론 물류, 스마트시티 등 첨단 기술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간주된다.
특히 구글은 이 데이터를 통해 자회사인 자율주행 기업 ‘웨이모’의 AI 주행 학습을 고도화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도 품질 개선을 명분으로 삼고 있지만, 실질적인 목적은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기반 확보”라고 해석했다.
지도 하나에 담긴 안보와 주권
그러나 한국 정부는 고정밀 지도 데이터의 해외 반출을 세 차례 연속 거부하고 있다. 이 지도 안에는 국가 보안시설과 군사기지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자칫 지도가 외국 서버에 넘어가면 한국 정부의 관리 밖으로 벗어나고, 보안시설의 위치가 외부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글은 정부가 요구했던 ‘블러 처리’(보안시설 위치 흐리게 표시)를 수용할 의사를 밝히며 한발 물러선 모양새지만, 그 과정에서 ‘직접 블러 처리를 하겠다’며 해당 좌표값을 요청해 또 다른 논란을 불렀다.
정부 입장에서는 보안시설 좌표 자체를 외국 기업에 넘겨주는 건 주권 침해로도 해석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현재 구글은 이보다 해상도가 낮은 1대 2만 5000 지도에 위성사진을 덧붙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로 인해 도보 길찾기나 고도 예측, 교통 정보 활용에서 기능적 한계를 겪고 있다.

정부는 내부 심의 과정을 거쳐 ‘측량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에 안건을 상정할 계획이다.
국토교통부는 “이번 사안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국가 안보와 밀접한 사안인 만큼, 국방부와 국정원의 의견이 최우선적으로 반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단이 안보뿐 아니라 산업 전략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국내 기업들도 정부로부터 고정밀 지도 데이터를 받아 이를 바탕으로 자율주행 및 스마트 모빌리티 기술을 개발 중이기 때문이다.

IT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이 아무런 조건 없이 그 데이터를 요구한다면 역차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결정은 기술과 안보, 산업 전략이 교차하는 정교한 균형 위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