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돌반지 전통이 흔들린다
금값 폭등에 ‘1g 반지’ 인기
현금이 돌 선물 1위로 부상

“조카 돌잔치에 금반지를 선물해야 할지 고민이에요. 예전에는 당연히 해줬는데, 지금은 한 돈에 세공비까지 더하니 60만 원이 넘네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100년 가까이 이어진 우리나라의 돌반지 문화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금값 앞에 흔들리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순금 한 돈(3.75g)은 지난 23일 기준 매입 시 60만 원에 육박한 가격에 거래됐다.
백 년의 전통, 돌반지 문화의 기원

아이의 첫 생일을 축하하는 돌잔치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이다.
국사편찬위원회에 따르면 금반지를 돌 선물로 주는 문화는 20세기 초 조선에 들어온 중국인들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중국에서는 경사스러운 일에 금붙이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고, 이를 본 조선인들이 돌잔치에 금반지를 선물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돌반지는 단순한 선물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금은 부정한 기운을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었고,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 자산으로 아이의 미래를 대비하는 투자 개념도 담겼다.

이런 가치 덕분에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에는 많은 가정에서 보관해 둔 돌반지를 금 모으기 운동에 내놓기도 했다.
치솟는 금값에 돌반지 문화 위축
하지만 이처럼 소중히 여겨오던 돌반지 문화가 최근 금값 급등으로 위축되고 있다.
지난해 3월 한 돈 기준 30만 원대에 거래되던 금값은 1년 만에 2배 이상 올랐고, 10년 전과 비교하면 4배 가까이 상승했다.

이러한 금값 급등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의 ‘관세 전쟁’에 따른 경기 후퇴 우려가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거래된 금선물 가격은 2월부터 4월 사이 트로이온스당 2935.66달러(약 421만 원)에서 3361.1달러(약 482만 원)로 달러 기준 14.5%나 상승했다.
국내 상황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한국거래소 금값은 2월 중순 투기적 매수세로 국제 시세보다 20.9%나 비싸졌다가, 이후 급락하며 현재는 국제 가격과의 괴리가 크지 않은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금값 괴리율이 6% 이상일 때 시장안내 공시를 내보내고 있다.

이러한 금값 상승의 영향은 시장에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 종로 귀금속 상가 관계자는 “투자용으로 금을 사려는 문의는 많지만, 돌반지를 찾는 사람은 줄었다”며 “사더라도 반 돈짜리를 구매하는 사람이 늘었고, 최근에는 반의반 돈이나 1g짜리 반지를 문의하는 경우도 여러 건”이라고 밝혔다.
이런 추세는 온라인에서도 확인된다. 신세계백화점 온라인쇼핑몰에서 ‘돌반지’ 판매량 순위를 보면 1∼4위가 모두 1g∼2g 사이 제품으로, 전통적인 한 돈짜리보다 가벼운 제품이 더 인기를 끌고 있다.
돌 선물 트렌드의 변화
금값 부담이 커지면서 전통적인 금반지 대신 새로운 선물 문화도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2023년 전국 성인 남녀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돌잔치 선물로 가장 많이 고려하는 항목’으로 현금 10만 원(53.1%)이 1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아기 옷·의류(29.3%), 현금 20만 원(26.9%), 금 반 돈짜리 돌반지(23.2%)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목할 점은 1돈짜리 돌반지를 선택한 응답자는 14.1%에 불과했고, 응답자의 88.6%가 돌반지 선물이 부담된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젊은 부모들의 선호도에서도 확인된다. 육아쇼핑 앱 ‘마미’가 2021년 20∼30대 엄마 640명을 조사한 결과에서는 가장 선호되는 돌 선물로 완구류, 도서류, 가구류가 상위를 차지했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온 전통이지만, 경제적 현실 앞에 돌반지 문화는 점차 더 실용적인 형태로 진화하는 듯하다.
금의 가치는 여전히 인정받지만, 그 무게와 형태는 시대에 맞게 가벼워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이제는 반지대신 금카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