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HP 주가 8% 급락
메모리 가격 상승 악재
하드웨어 수익성 ‘빨간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덕을 봤던 미국 하드웨어 업체들이 이제는 반도체 가격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는 델 테크놀로지스와 휴렛팩커드 엔터프라이즈(HPE)의 주가가 각각 8% 넘게 급락했다.
모건스탠리가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의견을 일제히 낮춘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급등하는 메모리 가격이 앞으로 수익성을 심각하게 압박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모건스탠리의 ‘투자 경고’
델과 HP엔터는 그간 AI 수요 확대에 따른 데이터센터 시장 성장의 수혜를 입으며 상승세를 이어왔지만, 이제는 같은 이유로 위기에 봉착했다.
고성능 반도체 수요가 폭발하며 D램과 낸드 가격이 오르자, 메모리를 조달해 장비를 공급하는 하드웨어 기업들이 오히려 수익 구조에 타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번 주가 급락의 불씨는 글로벌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보고서였다. 모건스탠리는 델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비중확대’에서 ‘비중축소’로 두 단계 하향했고, HP엔터프라이즈는 ‘비중확대’에서 ‘중립’으로 내렸다.
보고서는 메모리 가격 상승이 하드웨어 기업들의 수익성에 중대한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데이터센터 운영 기업)들이 AI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는 와중에, 메모리 조달률이 향후 두 분기 안에 최대 40%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모건스탠리는 “2026 회계연도 이익 추정에 있어, 메모리 가격 인상이 새로운 위험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델, 메모리 가격 상승에 ‘가장 민감’
델은 특히 메모리 가격 변동에 가장 취약한 기업으로 지목됐다.
모건스탠리는 과거 메모리 가격 상승기에도 델의 총마진이 95~170bp(1bp=0.01%) 줄어든 사례를 근거로 들며, 향후 12~18개월 동안 메모리 비용 상승이 델의 이익을 계속 짓누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델은 고성능 서버나 스토리지 장비에 대량의 메모리를 탑재해 공급하는 구조여서, 메모리 단가 상승이 곧장 제조원가에 반영되는 구조다.
즉, 가격을 전가하지 못하면 고스란히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HP엔터도 델보다는 덜하지만 비슷한 위험 요인에서 자유롭지 않다.
‘삼성·SK 메모리’의 양날의 검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위기는 바로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강자들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향력이 커진 결과이기도 하다.
두 회사는 최근 AI 수요 증가와 고성능 서버 확산에 맞춰 D램과 낸드 공급 가격을 상향 조정해왔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나 기업용 SSD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전체 메모리 시장의 가격 흐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미국 하드웨어 기업들 입장에선 과거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을 누리며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 ‘성장 원동력’이 되레 부담이 되는 구조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삼성과 SK의 저렴한 메모리를 수급해 수익성을 높였다”며 “이제는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을 주도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