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전기차, 수요 ‘제로’ 수준
페라리·포르쉐, 출시 계획 잇단 수정
전기차 시대의 선두주자로 지목되던 고급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잇달아 전동화 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다.
페라리는 내년 말로 예정됐던 두 번째 순수 전기차 출시를 최소 2028년 이후로 연기했고, 포르쉐 역시 전기차 확장 전략을 축소했다. 마세라티는 아예 신차 계획을 철회했다.
고성능 전기차, ‘지속 가능한 수요’ 없었다
로이터통신은 6월 17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페라리가 두 번째 순수 전기차 출시 일정을 2028년 이후로 미뤘다고 보도했다.
애초 2026년 말 출시를 목표로 했던 이 모델은, 고성능 전기 스포츠카에 대한 시장 수요 부족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됐다.
페라리는 지난 2019년부터 하이브리드 모델을 판매해 왔고 올해 10월부터 3단계에 걸쳐 첫 순수 전기차를 공개할 계획이다.
해당 모델은 내년 봄 세계 최초로 공개되며 첫 고객 인도는 내년 10월로 예정돼 있다. 이 모델은 애플의 전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니 아이브가 설계에 참여했으며 가격은 50만 달러(한화 약 6억 8370만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스포츠카의 감성 요소 중 하나인 엔진음이 사라지고, 전기차 배터리의 무게 및 지속 출력 문제 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으면서 고객들의 구매 욕구를 떨어뜨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감성 잃은 스포츠카, 시장의 반응은 ‘냉담’
한편 페라리의 두 번째 순수 전기차 출시 일정 연기는 단순한 전략 수정이 아닌, 시장 현실을 반영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배터리 기술의 한계로 인해 고성능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량만큼의 성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기차 특유의 무게감과 엔진 사운드의 부재는 전통적 스포츠카 소비자층의 외면을 불러왔다.
해당 전기차는 SUV 형태는 아니지만 기존 페라리보다 더 큰 차체를 지닌 독특한 모델로 개발되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이 모델의 수요를 확신할 수 없다는 판단이 우세했다는 것이다.
페라리는 오는 10월 9일, 새로운 장기 사업 계획을 투자자들에게 발표할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전기차 전략의 수정 방향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후퇴’하는 전동화 전략…포르쉐·마세라티도 속도 조절
페라리의 변화는 단독 사례가 아니다. 같은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는 지난해 12월, 자사의 첫 전기차 출시 시점을 2028년에서 2029년으로 연기했다.
포르쉐는 이미 전기 SUV ‘마칸’과 세단 ‘타이칸’의 판매 부진을 이유로 전기차 확장 전략을 조정했다.
마세라티는 보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스포츠카 MC20의 전기차 버전 출시 계획을 아예 철회한 것이다. 이는 고급차 시장에서 전기차 전환에 대한 기대감이 꺾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페라리는 전기차 전략 지연에도 불구하고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서는 여전히 높은 성과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슈퍼카 F80은 대당 가격이 360만 유로(한화 약 56억 7010만 원)에 달했음에도 불구하고 799대 전량이 완판됐다.
전기차가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주목받고 있지만, 고성능 스포츠카 시장에서는 아직 그 수요 기반이 확고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페라리, 포르쉐, 마세라티 등 전통의 브랜드들이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 배경에는, 감성적 요소의 결핍과 기술적 한계, 그리고 현실적인 시장 반응이 자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