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 시야 사각지대, 최대 58% 감소
보행자 사망률 증가와 직결된 위험성
디자인이 부른 ‘운전자 맹점’ 경고음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가 발표한 최신 연구 결과가 SUV와 픽업트럭의 운전 시야 사각지대 확대 문제를 지적했다.
IIHS는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총 17대의 차량을 대상으로 시야 확보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SUV와 대형 차량의 시야 사각지대가 최대 58%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차량 크기의 대형화와 디자인 변경이 최근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 사망자 수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SUV와 픽업트럭, 시야 사각지대 최대 58% 증가
IIHS는 이번 실험을 통해 포드 F-150, 쉐보레 서버번, 혼다 CR-V, 지프 그랜드 체로키, 도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등 6개 차종의 세대별 모델을 조사했다.
실험 방식은 운전석에 360도 회전 가능한 카메라 장비를 설치하고, 운전자의 키에 맞춰 높이를 조정한 뒤 차량 주변 10미터 반경 내 가시 영역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차량 주변 사각지대를 정량적으로 분석한 결과, SUV와 픽업트럭의 시야 사각지대는 모델이 최신으로 갈수록 크게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극단적인 변화를 보인 차종은 혼다 CR-V다. 1997년형 모델에서는 운전자가 10미터 전방 시야의 68%를 확보할 수 있었으나, 2022년형에서는 이 수치가 28%로 급감했다.
쉐보레 서버번 역시 2000년형 56%에서 2023년형 28%로 하락했다. 포드 F-150은 상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지만, 1997년형 43%에서 2015년형 36%로 시야 확보가 줄었다. 반면 혼다 어코드와 도요타 캠리와 같은 세단은 가시성 감소폭이 오차 범위 내에 그쳤다.
IIHS 데이비드 하키 회장은 “SUV와 픽업트럭의 시야 사각지대가 확대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며, 이는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 사망자 수 급증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미국 교통부(DoT)의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25년 동안 보행자 사망자는 37%, 자전거 사망자는 42% 증가했다.
자동차 디자인이 만든 ‘맹점’, 운전자 시야 차단
연구진은 차량의 디자인 변화가 시야 확보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했다.
특히 SUV와 픽업트럭의 경우 높아진 보닛, 두꺼워진 A필러(전면 유리 측 기둥), 대형 사이드미러가 시야 사각지대 확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러한 디자인 요소들은 차량 전면과 측면 모서리 근처를 가려 운전자가 가까운 거리의 보행자나 자전거를 인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IIHS 수석 연구 엔지니어 베키 뮐러는 “이번 결과는 미국 내 SUV 점유율이 크게 증가해 온 흐름과 맞물려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높아진 차량의 전면부가 충돌 시 보행자에게 더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점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서 사용된 360도 카메라 기반 측정 기법은 기존의 레이저 스캐닝이나 엔지니어링 도면 분석보다 훨씬 간편하고 실효성이 높은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IIHS는 “이 방법은 딜러숍이나 일반적인 도로 환경에서도 쉽게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보이는 차’에 대한 고민, 다시 시작될까
사실 자동차 디자인에서 운전자 시야 확보 문제는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지난 2002년 볼보는 A필러를 투명한 격자 구조로 제작해 사각지대를 줄이려는 ‘세이프티 카 콘셉트’를 선보였지만, 이후 실제 양산 모델에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이후에도 재규어, 토요타, 콘티넨탈 등 일부 제조사들이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시야 보조 시스템을 제안했지만, 아직까지 상용화된 기술은 드물다.
GM이 2022년 A필러 내부에 투명 요소를 삽입하는 특허를 출원하는 등 몇몇 시도가 있었지만, 업계 전반적으로 운전자 가시성을 중시하는 설계는 뒷전으로 밀려난 상황이다.
IIHS는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시야 사각지대와 보행자 사고 및 보험 손실 데이터를 추가로 연계하는 후속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IIHS의 경고는 분명하다. 자동차가 커지고 높아질수록 운전자의 눈앞이 더 많이 가려지고 있으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도로 위의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