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6년 6월, 현대자동차의 ‘포니’ 한 대가 에콰도르 땅을 밟았다. 그로부터 50년 만에, 2026년 4월 한국 자동차 누적 수출 대수는 7,654만 8,569대라는 전무후무한 이정표에 도달했다. 승용차 한 대 길이(4.7m)를 기준으로 일렬로 세우면 지구 둘레(약 4만km)를 약 9바퀴 감쌀 수 있는 규모다.
그러나 화려한 숫자 뒤에는 불안한 신호가 감지된다. 최대 수출 시장인 미국의 관세 압박,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침투,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도 중국산 전기차가 빠르게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다. ’50년 기적’의 다음 50년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전망이다.
포니에서 7,655만대까지, 반세기의 궤적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한국 자동차는 1999년 처음으로 누적 수출 1,000만대를 돌파한 이후 약 4년 주기로 천만 단위 기록을 경신해왔다. 2005년 2,254만대, 2008년 3,072만대, 2012년 4,196만대, 2015년 5,109만대, 2019년 6,109만대, 2023년 7,008만대가 그 발자국이다.
국내 생산 부문도 올해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1955년 미군 지프를 개조한 ‘시발(始發)’ 자동차가 첫선을 보인 지 71년 만에 누적 생산 1억 3,000만대를 돌파했다. 1992년 1,000만대, 2006년 5,000만대, 2018년 1억대를 넘어선 데 이은 대기록이다. 이 속도가 유지된다면 내년에는 누적 수출 8,000만대 고지도 넘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4년 1,000만대’ 공식,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편한 진실이 보인다. 2023년 누적치 7,008만대에서 2026년 4월 7,655만대로 약 647만대가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존 ‘4년 1,000만대’ 패턴에서 이탈한 수치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올해 수출 전망에 대해 “주력 시장인 미국과 유럽에서 소폭의 하방 압력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관세와 현지 생산 설비 가동의 영향이, 유럽에서는 중국계 제조사의 침투율 확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산 EV, 이제는 ‘홈그라운드’까지 위협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 시장이다. 중국산 전기차의 국내 점유율은 2022년 4.7%에서 2025년 33.9%로 불과 3년 만에 7배 이상 급등했다. 테슬라와 BYD의 판매 호조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올해 1분기 중국산 전기차 국내 판매량은 2만 5,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86.1% 급증했다.
업계는 국내 생산 촉진을 위한 세제 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주요국이 자국 생산 인센티브를 경쟁적으로 강화하는 만큼, 한국도 국내 생산 촉진 세제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유럽 등 주요국이 자국 생산 기조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생산 기반을 지키지 못하면 수출 동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50년간 7,655만대 수출은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이뤄낸 압도적인 성취다. 그러나 보호무역주의의 부상과 중국산 전기차의 맹추격이 동시에 몰아치는 지금, 다음 50년을 위한 정책적 대응과 기술 경쟁력 확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