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야심 차게 준비한 ‘테슬라 킬러’가 시장에 첫선도 보이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소니그룹과 혼다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소니·혼다 모빌리티(SHM)는 2026년 3월 25일, 전기차 ‘아필라 1’과 후속 모델 ‘AFEELA 2’의 개발 및 판매를 전면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아필라 1은 최저 8만 9,900달러(약 1억 3,477만 원)에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예약 판매를 진행 중이었으며, 올해 인도를 앞두고 있었다. 예약 고객에게는 예약금 전액이 환불될 예정이다. 단순한 신차 한 모델의 취소가 아니라, 일본 제조업의 협업 모델과 EV 전략 전체가 흔들리는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업계의 충격은 크다.
테슬라 대항마를 꿈꿨던 ‘일본 연합’의 야망
소니·혼다 모빌리티는 2022년 9월 설립됐다. 혼다의 차량 생산 기술과 소니의 디지털·엔터테인먼트 역량을 결합해, 미국 테슬라에 맞설 ‘일본 연합 전기차’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소니가 2020년 CES에서 공개한 고성능 전기차 콘셉트카 ‘Vision-S’였다. 소니·혼다는 아필라를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닌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플랫폼’으로 규정했다. 차량 실내를 새로운 콘텐츠 소비 공간으로 전환하겠다는 비전은 테슬라의 소프트웨어 중심 전략과 궤를 같이하는 혁신적 시도였다.
혼다의 전략 이탈이 결정타… 6조 5천억 손실 예고
프로젝트를 무너뜨린 직접적인 원인은 혼다의 EV 전략 전면 재검토다. 혼다는 지난 3월 12일, 북미 생산 예정이었던 전기차 3개 차종의 개발 중단과 Honda Zero 플래그십 모델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동시에 2025회계연도(2025년 4월~2026년 3월)에 최대 6천900억 엔(약 6조 5천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SHM 구조의 근본적 문제도 드러났다. 합작사는 차량 본체 개발을 혼다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였다. 혼다가 제공하기로 했던 기술과 자산을 철회하자, 소니 단독으로는 대체 방안이 없었다. 소프트웨어 강자와 하드웨어 강자의 협업이라는 청사진은 파트너의 전략 변화 앞에서 무력했다.
BYD에 밀리는 일본… EV 경쟁력 하락 가속 우려
아필라 무산은 일본 전기차 산업 전체의 위기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해석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BYD를 필두로 한 중국 전기차 업체가 성능과 가격 양면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높이는 가운데 일본 업체의 대응이 뒤처지고 있다고 직접 지적했다.
미국의 EV 지원 정책 축소도 악재로 작용했다. 글로벌 EV 수요 둔화와 정책 변화라는 이중 압박 속에서, 아직 양산 체계도 갖추지 못한 신생 합작법인이 버티기엔 시장 환경이 너무 가혹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니·혼다의 아필라 프로젝트 중단은 단순한 신차 취소를 넘어 일본 제조업 협업 모델의 한계와 글로벌 EV 경쟁의 냉혹한 현실을 동시에 드러냈다. 6년에 걸친 ‘움직이는 엔터테인먼트’ 꿈이 무산된 지금, 일본 자동차 산업이 새로운 EV 생존 전략을 어떻게 짜낼지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