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6주 만에 자산 규모 13조 원을 넘어선 ETF가 등장해 월가를 충격에 빠트렸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을 핵심 편입 종목으로 담은 미국 상장지수펀드(ETF)가, 한때 개인 투자자들의 상징이었던 캐시 우드의 ‘ARK 이노베이션(ARKK)’마저 자산 규모에서 추월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4일(현지시간), 소형 자산운용사 라운드힐이 지난 4월 2일 뉴욕증시에 상장한 ‘라운드힐 메모리 ETF'(종목코드 DRAM)가 약 90억 달러(약 13조 원)의 자산을 끌어모으며 ARKK를 넘어섰다고 보도했다. 현재 시가총액은 76억 달러(약 11조 3천억 원)이며, 최근 1개월 수익률은 59.17%에 달한다.
비트코인 ETF도 따라잡지 못한 자금 유입 속도
반다 리서치에 따르면 DRAM ETF의 순매수 누적액은 출시 27일 만에 2억 달러를 돌파했고, 6주 누적 순매수액은 2억 5천만 달러(약 3,620억 원)를 넘어섰다. 이는 엔비디아 등 인기 종목으로의 자금 유입 속도마저 앞지른 수치다.
비교 대상으로 거론되는 것은 2024년 출시 당시 가상화폐 ETF 열풍을 이끌었던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 ETF'(IBIT)다. IBIT가 동일 기준인 2억 달러 순매수에 도달하는 데 29일이 걸렸던 반면, DRAM은 이를 27일 만에 달성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ETF 애널리스트 에릭 발추나스는 DRAM 펀드의 급격한 성장이 “충격 그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기업이 절반…AI 인프라가 만든 ‘틈새 수요’
DRAM ETF의 포트폴리오는 컴퓨터 메모리·스토리지 관련 종목으로 구성된다. 14일 기준 SK하이닉스(28.1%), 마이크론(26.3%), 삼성전자(20.6%), 키옥시아(5.7%), 샌디스크(4.9%) 순으로, 상위 3개 종목만으로 전체의 75% 이상을 차지한다.
자금 유입을 가속화한 핵심 배경 중 하나는 미국 증시에 상장되지 않은 삼성전자·SK하이닉스에 대한 미국 투자자들의 ‘억압된 수요’다. 직접 투자가 불가능했던 이들이 ETF를 통해 간접 접근하는 통로가 생긴 셈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수요가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반도체 수요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점도 자금 유입의 근본 동력으로 분석된다.
ETF 출시 이후 편입 종목들의 주가도 크게 뛰었다. SK하이닉스는 89.4%, 삼성전자는 41.3%, 마이크론과 샌디스크는 각각 5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직원 12명의 소규모 운용사가 월가를 뒤흔들다
이 펀드를 운용하는 라운드힐 인베스트먼츠는 2018년 설립된 직원 12명의 소규모 운용사다. DRAM ETF는 연 0.65%의 운용 보수를 부과하며, 이미 라운드힐의 세 번째로 큰 ETF로 자리잡았다.
라운드힐의 데이브 마자 최고경영자(CEO)는 “수요의 상당 부분이 개인 투자자에게서 나오고 있다”며 “한국 개인 투자자들도 자국 핵심 기업에 투자할 수 있는 미국 상장 ETF가 생긴 것에 특별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메모리 반도체의 과점 구조와 AI 수요라는 구조적 드라이버가 맞물리면서 DRAM ETF의 자금 흡수력이 단기 테마가 아닌 중장기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ARKK가 초기 폭발적 인기 이후 수익률 부진으로 자산 유출을 경험한 사례처럼, 테마형 ETF 특유의 변동성 리스크는 여전히 경계 요인으로 거론된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가격 사이클과 AI 수요의 지속 여부가 이 펀드의 중기 성과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