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기 전 아이를 선택하는 시대
누가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

1997년 개봉한 SF 영화 ‘가타카’는 유전자 조작이 일상이 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유전자가 우성인지 열성인지에 따라 사람의 직업과 계층이 결정되고, 자연 출생한 아이는 출발선에서부터 밀려나는 세계였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는 이 설정이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로만 남지 않게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스타트업 ‘오키드헬스’가 실제로 배아의 유전 정보를 분석해 ‘더 나은 아이’를 선택하는 서비스를 내놓았고, 이 기술은 생명과 윤리의 경계를 다시 쓰고 있다.
5개 세포로 아이의 미래를 예측한다?

오키드헬스는 시험관 시술로 만들어진 배아에서 아주 적은 양의 세포, 단 5개만 떼어낸 뒤 아이의 유전 정보를 전부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을 통해 조현병이나 알츠하이머, 비만 같은 병에 걸릴 확률을 계산하고, 여러 개의 배아 중 질병 위험이 가장 낮은 것을 부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도 시험관 아기를 만들 때 특정 유전병이 있는지를 검사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그 범위는 몇 가지 병에 그쳤고, 오키드헬스처럼 1000개가 넘는 질병 가능성을 한꺼번에 분석해 점수로 보여주는 방식은 처음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200만 달러(약 167억 원)의 투자를 받았고, 미국 언론은 “앞으로는 아기를 ‘낳는’ 게 아니라 ‘고르는’ 시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논란이 커진 건 유명인의 사례가 공개되면서부터다. 일론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전 임원인 시본 질리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가운데 한 명이 실제로 이 기술을 거쳐 태어났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현재 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배아 분석에만 2500달러(약 350만 원), 시험관 시술엔 평균 2만 달러(약 2800만 원)가 들어간다.
결국 이 기술은 돈이 있는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는 셈이고, ‘유전자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걱정도 함께 커지고 있다.
“우리는 아이를 조립하려는가”… 비판의 목소리

전문가들은 인간 탄생의 기준을 유전 정보로 정하는 것에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시카고대의 로리 졸로스 교수는 아이를 부품처럼 맞추려는 사고방식 자체가 생명에 대한 존중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의 정확성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스탠퍼드대 유전학자 스베틀라나 야첸코 교수는 단 5개 세포만으로 전체 유전 정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고, 특정 질병 유전자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한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를 고를 수 있는 시대가 실제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에서, 사회는 새로운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