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효자였는데” 2억 깎아줘도 ‘안 사요’…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곳’의 눈물

유령 아파트가 되어버린 섬
관광객 발길 끊기자 상권도 휘청
끝이 보이지 않는 침체의 늪

“425세대 중 주인을 찾은 집은 단 한 곳.” 이는 공포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다. 한때 투자 열풍으로 뜨거웠던 제주도의 서늘한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풍경이다.

완공 후에도 텅 빈 아파트 단지가 통째로 경매 시장에 나오는가 하면, 제주의 명동이라 불리던 도심 상가에는 ‘임대 문의’ 현수막만 을씨년스럽게 나부끼고 있다.

주인을 잃은 유령 아파트, 공매에도 외면

제주 전역이 팔리지 않는 집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제주도가 지난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8월 말 기준으로 완공 후에도 분양되지 못한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무려 1,608세대에 달한다.

이는 이미 공사가 끝나 즉시 입주할 수 있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한, 이른바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된다.

특히 부동산 개발이 집중됐던 제주시 애월읍과 서귀포시 대정읍, 안덕면 세 곳에만 전체 미분양의 절반에 가까운 1,131세대가 몰려있다.

상황이 이토록 심각하다 보니, 애월읍의 한 아파트는 기존 분양가에서 2억 원을 할인한 ‘4억 원대 파격 분양’을 내걸었지만 여전히 매수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 지난해 12월 준공된 425세대 규모의 한 아파트 단지는 단 1세대만 분양되는 데 그쳤다.

결국 나머지 424세대가 통째로 공매 시장에 나왔지만, 최초 감정가 4,000억 원에서 수차례 유찰되며 가격이 1,000억 원 이상 폭락했다.

관광객 떠난 자리, ‘임대 문의’만 펄럭인다

주택 시장의 한파는 상권 붕괴라는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한때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었던 제주시 연동의 ‘누웨마루 거리’는 이제 한낮에도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제주를 찾는 내국인 관광객 수는 올해 들어 급격히 감소했다. 지난 3월에만 제주를 찾은 관광객 수가 전년 대비 14만 5천 명이나 줄어들었다.

상인들과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함께 급등한 항공료와 물가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굳이 비싼 돈을 들여 제주에 오느니, 비슷한 비용으로 더 큰 만족감을 주는 일본이나 동남아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분석이다.

제주의 침체는 단순히 부동산 경기 순환의 문제가 아니다. 고금리로 인해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주택을 사려는 사람이 사라졌고,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인구 유입도 멈췄다.

오히려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는 청년층이 늘면서 실제 거주 수요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다.

구조적인 공급 과잉, 수요 감소, 경기 악화, 고금리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얽히면서 제주 경제는 기나긴 터널에 갇힌 형국이다.